'할 수 있다'의 '긍정 바람'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듯싶다. 단초는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에서 놀라운 드라마를 쓴 펜싱 양궁 사격 등의 우리 선수들이다. 정말 짜릿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끝났다고 낙담한 순간에,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으로 기어이 기적을 일궈내는 그 멋진 모습이라니! 이제 누구라서 '긍정의 마음'에 경건히 고개 숙이고, 신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과연 우리 역사에도 그런 기적이 다수 실재했다. 명량대첩 등 여러 전쟁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겠지만 가깝게는 아직 역사라 하기에는 이른 얼마 전 과거에도 있었다. 그때는 '할 수 있다' 대신 '잘 살아보세'가 주문(呪文)이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황무지에 맨주먹뿐. 주문이 아니라 귀신에 씌어도 안 될 일 같던 '잘 살아보세'가 정말로 찾아왔다. 문제는 부작용이었고, 훗날 그 성과에 침을 뱉고 주인공들을 비난하는 배은망덕의 볼썽사나운 꼬락서니의 빌미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 민족에게 '긍정'은 아주 특별한 힘이 된다. 신명에 어깨가 들썩여지고, 함께 '으쌰 으쌰!' 손발을 맞추면 기적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 힘이 인류사에 유례 드문, 단절되지 않은 수천 년 역사로 지켜오게도 했다. 하지만 워낙 가진 것이 없는 터라 잠시 숨을 돌리고 나태해지면 금세 위기가 닥쳐오고 낙담하다가, 걸출한 지도자가 나타나 신명에 불을 붙여주면 다시 '으쌰 으쌰' 나아가 기적을 만들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대에 따른 지도자의 방략이다. 흔히 거론되는 '근대화의 기적'을 되돌아보자. 그때 이 나라 지도층은 사분오열로 국론통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덕성이 빈약한 군사세력이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게 한 빌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새롭게 등장한 지도자는 시대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해 '잘 살아보세'라는, 국민의 마음을 휘어잡는 키워드를 내놓았다. 말에 그치는 구호만이 아니라 실현가능한 비전도 나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솔선수범의 실천이었다.
쌀 증산이 가장 중요하던 시절, 지도자는 밀짚모자에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손수 모내기에 나섰다. 정치적 액션으로 폄하할 수도 있지만 가장 절실한 부분이었고, 농민들과 논두렁에 둘러앉아 막걸리잔을 나누며 경청하고 파안대소하는 모습의 사진 몇 장은 우리와 '함께'라는 동질감과 진실의 믿음을 주어 다른 정치인의 액션과는 분명 달랐다. 말은 또 어땠는가.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와 같은 다소 거친 표현도 있었지만 직접적이고 쉬운 말로 쏙쏙 귀에 들어와 국민의 마음을 울렸다. 그때 외래어로 범벅이 된 낯선 언어로 호소하고 설득했다면 과연 신명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웃음도 그랬다. 사회 밑바닥 계층 사람들과 함께하거나 분명한 성과 앞에서는 파안대소로 희망을 주었지만 측근이나 관료, 엄중한 시작의 앞에서는 엄하고 비장해 관료는 긴장하고 국민은 신뢰할 수 있게 했다.
황무지와 맨손의 뒷받침은 신뢰와 제도의 지원이 먼저일 것이다. 그때 군(軍)은 나라를 지키면서도 엄한 규율의 조직으로 선진제도를 먼저 수입해 실험하고 민간에 전파했다. 관료는 투철한 국가관으로 과업의 성공에 앞장섰다. 물론 그때도 사적 이익에 한눈 파는 파렴치한 공직자가 있었다. 그렇지만 처벌은 단호했고 정무직의 지휘책임도 거의 예외가 없었다. 경각심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이 국민의 분노에 부응하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가. 무능, 부패의 의심, 드러난 부정에도 오직 한 사람의 주관적 신뢰에 의해 책임에서 자유롭다. 설령 그 판단이 확실히 옳다고 해도 그렇게 민심과 국민의 분노를 외면하고서 긍정의 바람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소통'도 어려운 소리다. 듣기를 멀리했고, 그로 인해 설득의 때를 실기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저 국민, 혹은 다수의 불안과 분노에 수긍하고 합당한 조치부터 하는 것이 먼저이다. 내 마음속의 것을 놓지 않고, 오로지 내가 옳으니 믿고 '긍정'만하라는 외침은 그 가능성의 긍정마저 외면하게 할 오기이기 십상이다.
그때의 '잘 살아보세'와 오늘의 '할 수 있다'에는 명확히 다른 구석이 있음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의 긍정마인드에는 지난 4년 동안 지속된 풍부한 지원을 바탕으로 한 훈련이 있었다. 여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긍정마인드를 말하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전기료 폭탄이 무서워 전례 드문 폭염에도 에어컨 리모컨을 내려놓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블랙아웃 운운하며 되느니 안 되느니 하다가 몇 달 찔끔하는 선심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착각이다.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검찰을 위시한 사법부의 부패는 대중 영상물에서 공공연히 드러내 비난하고 관객은 열광하는 지경이다. 오직 지어낸 창작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혁은 '공수처' 정도나 운운하며 정치권의 주류에 자리한 그들은 눈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잘 살아보세' 시대의 군인과 법조인, 관료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온실 속 장미의 착각이다. 진정 국민의 긍정바람과 신명을 기대한다면 검찰의 수사권 박탈과 같은 근본적 개혁과 인사기준의 획기적 변화부터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영화관에 갔다. 원하는 시간대에는 스크린 옆 벽면에도 화면이 나오는 상영관 밖에 없다며 3000원을 더 요구했다. 뭔가 대단한 모양이다 생각했지만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는 사기극에 다름없는 조악한 장난질이었다. 문화권력이 된 민간 메이저들도 하는 짓이 그 정도다. 시장경제의 자유로 어쩔 수 없다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타당한 긍정을 위해 법이 없으면 법을 만들어야 할 일이다.
무작정 미워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오늘 대한민국의 위상에 특별한 날 '송로버섯' '캐비아'쯤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그 성찬이 새로 선출된 당대표가 아니라 올림픽 귀환 선수단을 위한 만찬에서였다면 누가 감히 왈가왈부하겠는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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