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에 발생하였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첨예한 동서(東西)냉전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소련이 미국 본토를 겨냥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시도에 미국이 검역이라는 이름으로 쿠바 해안 봉쇄에 나섰던 것으로 요약된다. 약 13일간에 걸쳐 이어졌던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이 사태는 다행히 파국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당시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의 비밀 접촉을 통해서 소련의 핵미사일 배치를 철회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그 당시 전 세계를 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악평을 받고 있다.
쿠바에 소련제 미사일이 배치될 것이라는 정보를 접한 케네디 대통령은 여러 장관과 참모들의 의견을 구해 쿠바 봉쇄 또는 공격에 축을 두고 그 선택을 고민했다. 하지만, 당시 유엔(UN)주재 미국 대사인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면, 미국 또한 소련을 겨냥하여 터키에 설치한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할 수 있다는 거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의견이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이를 두고 상당히 용기 있는 제안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미국의 쿠바 봉쇄가 주효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위기 해결은 소련과 미국이 각각 쿠바와 터키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하는 비밀거래가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 후대의 평가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호전적인 소련이 어느 날 갑자기 미국 본토를 겨냥해 핵미사일을 설치했기 때문에 발생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 이전에 이미 배태(胚胎)되었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쿠바 미사일 위기는 극단적인 냉전 갈등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1961년 독일에서의 제2차 베를린 위기와 쿠바 체제 전복을 겨냥한 미국의 피그만 침공, 1962년 미국의 모스크바를 겨냥한 핵무기 배치 등에, 핵무기 개발과 배치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던 소련이 쿠바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설치해 일시에 자신의 전략적 열세를 만회하려 했던 것이다. 요컨대, 쿠바 미사일 위기는 냉전기 미국과 소련 간에 깊이 내재되었던 군비경쟁과 상호불신이라는 병리적 증상의 발현이라 할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에 온 나라가 초긴장 상태다. 대통령은 장관과 군부 등을 통해 북한의 최고 지도부를 제거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당위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핵에 맞서 핵무장까지 운운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의 핵실험에 많은 우려와 비판을 보내면서 추가 제재를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의 지속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우리의 선택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누군가가 겁쟁이가 되어야 한다며 소련과의 협상을 주장한 스티븐슨 대사의 입장을 곰곰이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핵무장을 통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은 겉으로 보기에 용감하게 보이지만, 실은 무책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핵무장은 핵 확산을 방지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인근 강대국의 핵무장을 부추김으로써 결국 한반도를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현재의 군사적 대치와 무장 상황을 고려할 때 제2의 한국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제한전 또는 국지전이라는 희망과는 달리 남북한 양쪽 모두 상상할 수 없는 참화로 이어질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냉전의 극단적 증상의 발현이었던 것처럼, 북한의 핵실험 또한 안보 위기의 원인으로 보기보다는, '갈등과 대결'만이 정치적 상호작용으로 작동하는 현실의 증상으로 보아야만 한다.
마이클 딜론이라는 비판안보학자는 안보를 '근대적 정치의 퇴적물(堆積物)'이라고 비유하면서, 미래의 안보는 평화적인 정치적 배열을 찾아내는 노력에 달려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단기적으로는 다소의 냉각기간을 가진 후 국제적 공조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해야만 할 것이다. 6자 회담이라는 틀 속에서 북한과의 지난한 대화를 가진 후에 북한을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협력기구로 편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타자(他者)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한반도에 만연해 있는 상호 적대성 완화에 남북한이 함께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이 시점이야말로 갈등의 고리를 끊고 평화적인 정치적 배열에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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