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설적 탈옥수 중 한 명인 스티븐 러셀은 소년원 시절인 1970년부터 1998년까지 수차례 탈옥과 검거를 되풀이하며 기상천외한 탈옥 수법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수감자들이 처음 들어올 때 벗어둔 사복을 훔쳐 입고 면회 온 일반인처럼 유유히 탈출한 건 양반. 흰색 죄수복을 녹색 잉크로 염색, 의료진으로 위장해 감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마지막엔 에이즈 관련 서적을 탐독한 뒤 설사약으로 체중을 줄이고 의료진단서까지 위조, 에이즈 환자인 양 가석방을 받아냈다. 그의 IQ가 163이었다니 천재 탈옥수란 소리를 들을 만도 했다.

스티븐 러셀의 탈옥 뒤 행적도 놀랍다. 그는 탈옥 기간 경력을 조작, 기업 CFO 등으로 취직해 회삿돈을 횡령하는 등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런 기이한 행적 탓에 그의 일대기가 영화화됐을 정도. 그가 줄기차게 탈옥을 시도한 목적이 연인을 만나기 위함이었다니 영화 제목이 연인 이름인 '필립 모리스'라는 점이 일견 이해도 된다.

모든 수감자는 감옥 밖의 세상을 꿈꾸겠지만 탈옥수에겐 더 절박하고 큰 꿈이 있을 터. 2001년과 2015년 두 차례 탈옥한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탈옥도 전설로 꼽힌다. 특히 두 번째 탈옥은 감방 바닥에 1년가량 지하 10m 깊이의 굴을 파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대기를 영화화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한 인터뷰를 한 게 꼬리잡혀 184일 만에 붙잡혔다. 그가 검거 당시 한 말이 "휴가는 이제 끝났다"였다니 참으로 비싼 휴가였던 셈이다.

탈옥의 끝이 죽음인 사례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것이 1988년 발생한 지강헌 일당 집단탈주 사건. 교도소 이감 도중 호송버스에서 집단탈주, 4명이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두 명은 자살하고 지강헌은 경찰 총격으로 사망하는 등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특이하게도 지강헌은 당시 경찰과 대치를 하며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Holiday)'를 틀어달라고 했다. 그래선지 이후 지강헌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제목도 '홀리데이'였다.

연쇄살인범 정두영이 대전교도소에서 탈옥을 시도하다 붙잡혔다는 소식이다. 몰래 만든 사다리를 이용해 담 2곳을 뛰어넘고 마지막 담을 넘으려다 센서가 울리며 교도관에게 발각됐다. 2000년 사형을 선고받은 그에게 남은 꿈이라고는 탈옥밖에 없었을 터. 그 또한 영화 같은 탈옥을 꿈꿨던 걸까. 하지만 아무리 영화 같은 탈옥일지언정 그 끝엔 연인도 휴가도 홀리데이도 없는 법이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