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신고 1호는 대학생이 교수에게 건넨 캔커피였다. 경찰은 112전화를 이용한 익명 신고인 데다 교수와 학생 이름 등 구체적인 사안을 밝히지 않아 접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 경찰의 안내대로 서면으로 구체적인 사항 등을 적시해 신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제간에 벌어진 일이니 현장은 학교일 가능성이 높다. 신고자도 열에 아홉은 학생일 터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법)대로라면 어떤 대학교인지 모르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한 범죄현장으로 몰렸을 테고, 교수와 학생은 졸지에 청탁하고 향응을 받은 몰지각한 범죄자가 될 뻔했다. 그리고 112전화를 한 학생은 신고 정신이 투철한 청년으로 칭송을 받았을까 아니면 동료 학생과 스승을 고발한 냉혈한 소리를 듣게 될까.

학교 안에서만도 이런 경우는 수두룩하다. 학생이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한 송이를 가슴에 달아주는 것, 초등학교 1학년생이 "선생님 사랑해요"라면서 손에 꼭 쥐고 오느라 눅눅해진 사탕 하나를 건네서 받았다면 죄가 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교원평가 때문이다. 받는 사람이 공직자가 아닌 학생이기 때문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선생님들은 오해받을 일은 하지 말자는 쪽으로 이미 기울었다. 그래서 '참 잘했어요' 칭찬 스티커 10개를 모은 아이들에게 학습의욕을 높여주기 위해 연필을 나눠주던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 풍경도 사라졌다. 다면평가 때문에 동료 간 식사나 선물도 청탁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게 요즘 교무실 모습이다.

대다수 시민은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이하'만 지키면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사실 이게 전부라고 한다면 간단하다. 또 시간이 지나면 적응될 일이다.

그러나 김영란법 안에는 '직무 관련성'이라는 암살자의 칼날이 숨어 있다. 직접적 직무 관련성이 있다면 '3·5·10 규칙'은 적용이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에게 사탕 하나도, 대학교수가 캔커피 하나도 받아서는 안 되는 게 이 때문이다. 김영란법 신고 1호 캔커피가 왜 중한지 이제 알 만한가.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판사와 변호사, 건축사와 건축공무원 등 딱 떨어지게 직무 관련성이 있다면 서로 소 닭 보듯 하면 되겠지만 한 다리 건너 사돈네 팔촌도 걸면 걸리는 게 인간관계이고 사람 사는 세상이다. 잠재적 직무 관련성까지 범위를 넓히면 머리가 어질해진다. 직무 관련성에 대한 질문엔 검찰도 법원도 국민권익위도 명쾌한 대답을 못 하거나 말들이 다르다. 그러다 내놓는 결론은 이렇다. 의심가면 하지 마라!

더욱 헷갈리는 건 예외조항과 고무줄 같은 유권해석이다.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원활한 직무수행 목적'이 있으면 '3·5·10 규칙' 안에서 가능하단다. 직접적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해놓고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서라면 예외적으로 허용된단다. 이게 뭔 소린가. 당신은 이해되는가? 나는 모르겠다. 또 가족이 아파 대학병원에 갔다고 치자. 죽겠다는 환자를 가만히 볼 수 없어 빨리 진료받게 해달라고 하면 청탁이 된다. 그럼 무조건 기다려야 하나? 권익위는 위독할 경우 '의학적 판단에 따라 사회 통념상' 허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위독한지 어떤지 비전문가인 가족이 어떻게 아나? 만일 가족 말을 듣고 의사가 진료했는데 위독하지 않으면 이제 김영란법 위반이 되나? 환자가 아프다고 뒹굴 때 청탁할까 말까? 또 모르겠다.

법은 지키기 쉽고 명확해야 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도 했다. 법이 너무 복잡하고 번거로우면 아무도 지키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법망에 걸리는 건 힘없고 물정 모르는 잔챙이들뿐이다. 패공 유방이 가혹한 법으로 악명 높았던 진나라의 군대를 쳐부수고 수도 함양에 입성해 천하를 일거에 평화롭게 만든 것도 '약법 3장', 한자로 18자뿐이었다.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자 및 도적질한 자만 벌한다'.

김영란법은 부정부패를 없애자는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부패 고리를 끊자고 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개인의 일상사 하나까지 국가기관에 물어보고 행동해야 한다면 그건 결코 좋은 법은 못 된다. 또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불신과 의심, 감시와 고발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체계라고 한다면 이웃 5가구를 묶어놓고 서로 감시, 고발하게 하는 북한의 '5호 담당제'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김영란법은 보완이 필요하다. 김영란법을 옹호하면 마치 청렴결백하다는 걸 입증하는 증표나 되는 양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보완이나 수정을 주장하면 뭔가 뒤가 구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까 봐 움츠러드는 것도 옳지 않다. 답답하고 이치에 맞지 않고 어처구니가 없을 때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 이런 법도 있습니까?"요즘 부쩍 많이 듣는 소리다.

논설실장 so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