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얘기다. 같이 근무하던 여자 팀장이 반려견을 안고 출근했다. 미혼인 이 팀장, 혼자 사는 게 이유였다. 반려견은 노병이었다. 팀장은 반려견을 탈의실에 두었다. 그녀가 팀장이니 사무실에서는 갑이었다. 이건 좀 심한 게 아닌가, 라고 측근을 통해 에둘러 말했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반려견의 출근은 한 달쯤 후에야 그쳤다.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다. 그녀가 울었다. 며칠 출근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로서는 그런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반려견을 데리고 출근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수였다.

세월이 흘렀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기니피그'를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 팀장의 유별난 사례를 본 나는, 집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게 마땅치 않았다. 아이에게 좀 독특한 걸 찾아보라고 했다. '안돼'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독특한 걸 제시했다. 고슴도치였다. 아빠로서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애완동물 시장에 함께 가서 고슴도치 한 쌍을 골랐다. 그럴 듯한 은신처도 만들었다. 이때까지도 짐작 못 했다. 그게 여자 팀장의 전철을 밟게 되는 일이라는 걸.

한 쌍의 고슴도치는 무럭무럭 자랐다. '안팅' '핸들링' 등의 용어도 공부했다. 안팅은 고슴도치가 냄새를 기억하려고 혀에 거품을 묻혀 자기 가시에 바르는 일이다. 핸들링은 손 안에서 몸을 동그랗게 움츠리는 걸 말한다. 고슴도치는 물이 귀에 들어가면 죽는대. 겁이 겁나게 많은 동물이래. 앞을 못 보고 후각으로 움직인대…. 순식간에 고슴도치 전문가가 되었다. 그중 최고 아찔한 용어는 '카발'이었다. 예민한 고슴도치는 위험을 느끼면 제 새끼를 물어 죽이거나 잡아먹어 출산 흔적을 지운다. 그것을 익히기 무섭게 고슴도치가 새끼를 낳았다. 무려 여섯 마리였다. 사오기 전에 저희끼리 눈이 맞은 모양이었다. 여섯 마리의 새끼와 카발. 어미 신경을 건드리면 새끼를 물까봐 까치발로 걸어 다녔다.

며칠이 지나자 새끼들이 기어 나왔다. 사료를 물에 불려 주었다. 흰 배털에 초콜릿색 선명한 등가시 배색. 뒤뚱거리며 먹이를 먹는 새끼들은 절정의 귀요미들이었다.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보금자리가 문제였다. 새끼는 한 달 사이에 성체 못지 않게 성장했으니 '주택'문제가 대두되었다. 아이를 설득해 두 쌍의 분양을 결정했다. 여기서도 문제가 생겼다. 고슴도치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아이가 찜해 둔 놈들을 원한 것이다. 분양을 사정한 건 우리 쪽이니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 눈에 눈물이 비쳤다. 어, 하는 사이에 똑같은 문제가 발생되었다. 고슴도치들의 번식력은 생각보다 '어마무시'했다. 이번에는 네 마리가 나왔다. 젖을 떼고 얼마 후 분양을 했다. 이때부터는 확실하게 대비를 했다. 아예 암수를 분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슴도치 수가 늘어났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못 키우겠다며 반품(?)한 것이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이 고슴도치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고슴도치 수명은 평균 5년. 4년이 지나자 한 녀석 한 녀석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아이 눈동자에도 샘물이 대롱거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작은 열대어 같은 것은 키우다 잘못되어도 그리 슬프지 않았다. 그런데 목욕시키고 새끼까지 받아낸 고슴도치는 달랐다. 하나 둘 세월을 따라가는 고슴도치를 보며 여자 팀장을 떠올렸다. 우리는 한 가족이지만 여자 팀장은 독신녀다. 고슴도치는 아프면 신음을 낸다. 제법 크다. 그래도 반려견 소리보다는 작다. 긴 밤 반려견의 신음을 들으며 건너온 그녀. 이른 아침, 어떻게 혼자 두고 출근할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안고 나온 모양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녀가 상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목숨이 경각에 달린 반려견을 차마 혼자 둘 수 없었다는 걸.

가을이 되었다. 여름 내내 지나다닌 길에 작은 들꽃이 피었다. 원래는 저 자리에 있는지 알지도 못했던 꽃이다. 그게 때가 되자 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사람의 일도 그와 같아 세월이 흘러서야 이해되는 일들이 있다. 자기 일이 되어야만 와 닿는 일들이 있다. 여자 팀장의 일이 그 쪽이었다. 고슴도치에게 날개를 달며 생각했다. 그래도 한 집에 살았다고, 씻겨주고 밥 챙겨준 보답으로 이런 진리까지 깨닫게 해서 고맙다고. 좁은 보금자리에다 키운 게 미안했기에 날개라도 큼지막하게 나기를 빌었다. 날아라 도치야. 이제는 저 파란 하늘이 다 너의 집이야!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