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에 예정된 축구대표팀 A매치가 부산에서 12년 만에 처음으로 열릴지도 모르겠다. 대한축구협회가 미국 축구대표팀 초청 경기를 추진 중인데 개최 도시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부산이 나서면 유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축구협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부산에서 A매치가 열린 것은 2004년 12월 독일과의 친선전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어찌 된 영문인지 부산시민들은 국가대표급 경기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부산으로서는 대회를 유치할 명분이 충분하다. 겨울에 축구경기를 치를 만한 도시는 부산을 비롯해 몇 군데뿐이다. 기후도 그렇거니와 12년 동안 한 번도 A매치를 개최하지 못했다는 점도 설득력이 있다. 더구나 대한축구협회장이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의 구단주라는 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 부산 구단도 대회 유치를 위해 물밑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산시축구협회는 2007년 국제대회를 유치하고도 이를 제대로 치르지 못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페널티를 받았다. 그 페널티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건 협회 간의 협의를 통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다.

부산이 A매치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지자체가 유치 보증금 2억 원을 부담해야 하고 부산축협이 입장료 수익 2억 원을 책임져야 한다. 돈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2월 초면 앞으로 넉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 준비하기에도 빠듯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대회 유치에 발 벗고 나서야 할 부산축협이 내부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도부 공백 상태로 협회가 아무 일도 못 하고 손 놓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축협 사정이 이러니 부산시든 대한축구협회든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이 없다.

이쯤에서 부산시축구협회 문제를 한 번 짚어보자.

부산에서 A매치가 끊긴 2004년은 현 백현식 회장이 부산축협 회장으로 취임한 시기와 겹친다. 그 이후 백 회장이 10년 넘게 협회장을 맡아왔다. 그는 그동안 선거 과정에서 소송을 당하는 등 물의가 있었고, 지난 4월에는 생활체육연합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올해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통합에 따른 통합축구협회 회장선거에도 백 회장은 출마 의사를 내비쳤으나 시체육회가 제동을 걸었다. 연임 심사에서 불가 처분을 내렸다. 시체육회는 백 회장이 재임하는 동안 제대로 이뤄놓은 게 없다는 입장이다. 축구계 안팎에서 백 회장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점도 감안됐다. 백 회장은 이에 반발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통합회장 선출이 늦어지자 지도부 공백에 따른 협회의 사무도 올스톱됐다. 다른 협회와 비교해도 축협의 통합은 지지부진하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팽팽히 맞섰던 배드민턴이나 동호회와 협회의 갈등이 있었던 테니스도 통합회장을 선출한 지 오래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부산축구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도 나온다. 지역의 언론사에서 주최하는 중고축구대회조차 부산에서 열지 못해 김해나 양산에서 열고 있는 형편이다. 뜻있는 부산의 축구인들이 만든 '부산FC'가 K3리그 참여를 목표로 새롭게 출발하려 하지만 협회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또 축구인들의 소망인 축구전용구장 마련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다. 가까운 창원축구센터만 해도 규모가 크진 않지만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매력적인 환경을 자랑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역의 축구발전을 위해 앞장서야 할 부산축협의 집행부는 자신의 자리보전에만 관심을 둔다는 비난이 높다. 4년마다 치렀던 선거는 지도부가 몇 안되는 대의원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그들만의 리그'가 되풀이됐다. 지역 축구계에서는 통합회장 선거를 계기로 이참에 확실히 축구판을 갈아엎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굳이 A매치를 거론하는 이유는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직접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이를 통해 축구붐을 일으키고 침체된 지역 축구계에 전환점을 만들어보자는 거다. 부산 축구는 지금 암흑기를 지나고 있다. 프로축구는 2부 리그로 떨어져 있고 아마추어 팀들의 성적도 변변찮다. 2002년 월드컵 때 폴란드를 꺾은 축구의 성지, 부산축구의 자존심을 되살려보자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산축구협회가 환골탈태해야 한다. 부산엔 야구 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