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이래 가장 더웠다는 지난여름 딸을 만났다. 5년 반 만이었다. 아들들도 군대 가면 2년이면 돌아오는데 5년 반이란 시간은 너무 가혹한 생이별이었다. 한동안은 이메일로, 스마트폰을 산 뒤로는 카톡과 영상 통화로 그리움을 달랬다. 하지만 사오 년이 지나면서 그리움은 통증이 되고 말았다. 졸업까지는 아직 1년이 더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참다가는 둘 다 지레 말라버릴 것만 같았다. 행복은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랑하는 혈육을 못 만나는 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딸의 생일에 맞춰 캐나다에서 한 번 경유하는 싼 티켓을 구해 뉴욕으로 날아갔다. 라구아르디아 공항에서 상봉을 했다.

어디 보자 내 딸아. 심 봉사 청이 앞에서 눈 뜨는 심정이 그럴까.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찰나였다. 내 얼굴이 얼마나 일그러졌던 걸까. 엄마 인상 쓰지 마. 딸이 얼마나 정색을 했던지. 눈물이 쑥 들어갔다. 첫 마디가 인상쓰지 말라는 지청구라니. 미국년 다 됐네. 딸이 낯설었다.

서로 마주 보고, 더 늙었네 그대로네 하면서 살피는 사이에 우리는 다행히 눈물 바람 없이 공항을 나설 수 있었다.

딸이 사는 퀸즈 우드사이드 55번가까지는 공항에서 택시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집에서 맨해튼까지 기차로 5분, 7번 도시철도로는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이민자가 많은 동네는 수더분해서 좋았다. 중국인 소유인 오래된 공동주택에서 4명의 유학생이 방 한 칸씩 차지하고 있었다. 공동취사를 할 수 있는 부엌과 한 사람 서면 몸 돌리기도 힘든 샤워실이 딸려있었다. 햇빛 드는 2층이란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여름방학인데도 학비를 벌기 위해 다들 알바하느라 낮에는 집이 텅 비었다. 쥐잡기를 명목으로 집주인의 허락을 얻어 키우는 어린 고양이 달리와 나, 둘만 남았다. 4명이 공모해 지은 이름이 살바도르 달리였다. 고양이 이동가방에 넣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는 개구쟁이였다. 딸이 알바를 가고나면 나는 몇 군데 그린마켓을 돌며 발품을 팔아 더 싸고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샀다. 한인 마트에서는 김칫거리를 사와 김치를 담고, 찹쌀가루로 새알을 만들어 들깻가루를 넣은 새알미역국을 끓였다.

딸은 어릴 때부터 새알미역국을 좋아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잡곡밥을 짓고 밑반찬을 만들고, 창문도 없는 좁은 부엌에서 요리를 할라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동안 못다한 어미 노릇이라 생각하니 더운 줄도 몰랐다. 하지만 딸은 밤늦게 지쳐서 돌아와 아예 숟가락 들 생각도 못 했다. 안타까웠지만 이미 내 품을 떠난 지 오래였다. 간섭하다가는 우리 사이의 평화가 깨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조심스러웠다. 나는 마음 둘 곳이 필요했다. 틈틈이 우드사이드 역에서 7번 도시철도를 타고 나가 햇빛이 따끈따끈하게 쏟아지는 맨해튼 거리를 걸었다. 어떤 억압도 없이 자유로웠다. 한인 카페나 가까운 도서관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글을 쓰거나, 예전에 갔던 미술관을 다시 가보고, 못 가본 미술관을 방문했다.

김밥을 싸서, 딸과 함께 갔던 9·11기념관과 디아비컨 미술관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세월호 유족들이 이 기념관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기사를 떠올리며 새삼 가슴이 아팠다. 망자들의 사소한 흔적들까지 세심하게 보존하여 유족들을 위로하는 미국인들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디아비컨 미술관은 그랜드센트럴 역에서 기차로 1시간 반쯤 달려서 도착한 곳이었다. 과자 포장지 인쇄 공장을 사들여서 미술관으로 개조했다는데, 웅장하거나 권위적인 공간이 아닌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한 곳이었다. 공간도 엄청나게 넓어서 규모가 큰 현대미술 작품을 수용하는 데에 손색이 없었다. 2층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들이, 넓은 지하 전시장에는 리처드 세라의 거대한 미니멀 철 조각품이 상당수 전시되어있었다. 성인 키의 두 배에 가까운 철판 입구를 따라 달팽이관처럼 빙글빙글 돌아 들어갔더니 마치 옹슬방 같은 멋진 공간이 나왔다. 철판 표면의 밝은 녹조차 매혹적이었다. 누구라도 그 속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을 그런 작품이었다.

돌아오기 전날 해 질 녘을 택해서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갔다. 아주 오래전 3일간의 단식을 끝내고 이 다리를 자신이 만든 밥통을 목에 걸고 건넜다던 젊은 개념미술가를 떠올리면서. 오래전 딱 이맘때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에서 처음 그의 작품을 보았다. 시립미술관 옥외 전시장에 설치된 대형 간판 글씨였다. "우리는 행복해요"라고 적혀있던. 북한의 선전구호를 보고 착상했다는 그의 유작품이었다. 마치 그의 유언처럼 느껴지던 그 서늘한 역설.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요? 나는 딸에게 "행복해?"라고 묻지 못했다. 그저 "행복해라" 라고 말했을 뿐. 가방을 밀면서 1층 현관문을 나서는 나를 계단 위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달리의 슬픈 눈이 오래 나를 뒤따랐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