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중국의 민낯은 몰염치한 이기(利己)와 안하무인의 위세였다. 자국의 어선이 남의 나라 영해를 침범해 불법 조업하는 것도 모자라 그 나라 공권력에 대항해 단속함정을 침몰시키는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첫 반응이 '이성적 대처' 운운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성을 말하는 것인지. 게다가 향후 강력하지만 정상적인 대처 방침 발표에는 관영언론을 동원해 '한국정부 돌았나'라는 비속한 제하(題下)로 속내를 드러냈다. '돌았나' 따위의 언사는 시정잡배들이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 때 내뱉는 위협의 상말 아닌가. 결국 울뚝불뚝한 근육을 배경으로 골목대장처럼 우리를 위협한 것이다.
먼저, 중국의 시장을 가보면 손바닥 절반 크기의 홍게에서부터 엄지손가락 크기의 조기까지 어족 보존은 안중에도 없는 싹쓸이 조업의 실체가 생생히 펼쳐진다. '아내에게 생선 한 마리라도 더 갖다 주려는 어부' 운운하는 중국 당국의 감성 토로는 너무 염치없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없으면 남의 것을 훔치면 된다는 심보부터 다스리는 것이 우선 아닌가.

먹어 대는 건 또 어떤가. 거창한 고급식당일수록 테이블마다 산해진미가 넘쳐난다. 주로 고기를 즐기던 입맛이지만 생선이 건강에 좋다니 가짓수가 더 늘어난 것이고 살점 몇 점 뜯기고 버려지는 것도 부지기수이다. 부자가 그러니 가난한 사람은 값싼 생선으로라도 따라가야겠고, 상인과 어민은 어린 새끼로 부채질하는 것이다. 그 어이없는 식탐과 낭비, 염치없는 탐욕을 세계가 감당해야 하는 꼴이라니.

개인의 몰염치를 국가가 어찌하겠느냐는 생각은 중국을 너무 몰라서이다. 근년 들어 공권력에 항거하는 집단행동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팽창과 억압의 모순에 따른 과부하에 잠시 숨통을 터주는, 통제할 수 있는 관리 차원일 뿐 결코 근원적인 불씨로 여기지는 않는다. 중국의 공권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초법적인지는 보통의 상식을 넘어선다.

중국에 머물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밤중, 아파트 바로 위층에서 물이 쏟아져 아래층 몇 집이 때아닌 수해를 겪는데 관리사무소는 집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침이 밝고 오전 9시가 지나 집주인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올라가 보니 사고는 싱크대 수도꼭지가 터져 벌어진 것이었고, 실내는 일반 가정집으로 꾸며져 있는데 가구만 있을 뿐 책 한 권 없는 빈집이었다. 뭔가 이상해 기왕 빈집이니 세를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공안국 소유로 세를 주는 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중국인 관료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건 다반사이니 욕실 가까이에서는 말조심하라며 웃었다. 아파트 전 층이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는 중간층쯤에 고성능 녹음기를 설치해놓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낱낱이 들여다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외국인뿐 아니라 자국민도 다르지 않으며 자신들에게는 너무도 오래되어 덤덤한 일상일 뿐이라는 자조의 헛웃음을 위안으로 삼았다.

중국 어선의 노략질은 우리 영해뿐 아니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해역으로까지 넓혀졌다. 사실상 국제적 해적 떼인 셈이다. 당연히 여러 나라에서 엄격한 대처로 자국의 영해와 어민의 이익을 지킨다. 엄격한 인도네시아의 대처는 듣는 것만으로도 속을 후련하게 한다. 불법 조업한 어선은 침몰시키고 공군기가 출격하기도 한다니. 아르헨티나도 사격을 주저하지 않는 모양이다. 엊그제 북한 국적 어선에 대한 단속과정에서 총기를 발포해 사상자를 낸 러시아의 대처는 또 어떤가.

문제는 우리의 자세이다. 함포까지 사용하겠다는 엄격한 대응이 얼마나 실행될지 미덥지 않은 국민이 다수이다. 정부의 중국 눈치 보기를 수없이 보아온 까닭이다.

사정을 모르지는 않는다. 집중된 중국과의 경제관계도 있고, 특히 북한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협조도 절실하다. 국내적으로는 중국과의 교역이나 교류로 외교관계에서의 자제와 인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중국의 패권적 태도를 보아왔다. 그저 근육 자랑 정도가 아니라 종속된 굴복을 요구하는 듯한 안하무인의 자세이고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이대로는 조선의 사대(事大)가 오래지 않아 부활되지 않을까 두려울 지경이다.

중국에 기댄 북핵 문제 해결이나 통일은 그저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점점 뚜렷해진다.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과의 한미방위조약을 더욱 강화하며 같은 이념을 가진 나라와의 긴밀한 협력이 우선 필요할 듯싶다. 이념은 다르더라도 시베리아와 연해주에서 상호이익의 협력이 절실한 러시아는 중국을 보완할 수단이 되어 줄 것이다. 무엇보다 당장은 조금 어려움을 겪더라도 환태평양 중심국가의 지정학적 입지를 살려 눈치 보기가 아니라 상대가 먼저 손 내밀도록 만드는 천 년의 기반을 다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중국을 향한 세계의 경계와 우려는 원근(遠近)을 불문하다. 남중국해에서의 우악스러움은 국제조약에 따라 설립된 헤이그 상설분쟁재판소의 결정마저 깔아뭉갰다. 분쟁의 당사자인 베트남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속이 어떨까. 이제 그들뿐 아니라 아세안 제국(諸國)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우리도 때론 정당한 목소리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빌붙어서 눈치나 보는 나라쯤으로 여겨지면 지갑이 조금 두둑하더라도 그들부터 우리를 깔볼 것이다. 아니, 당장 지금이 그런 꼴이다.

중국과의 협력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다만 굴신해야 살 수 있다면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세안과 인도, 러시아는 최소한 배 불러진 중국에서 당하는 꼴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당당히 자존심을 지키고 정당한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다급해질 것은 중국이다. 어쩌면 그들이 먼저 레짐 체인지에 나설지도 모른다. 미친 김정은 정권만 아니라면 설령 친중 정권이라 할지라도 길을 얼마든지 나온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