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가 휩쓸고 간 지난 6일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외국인 세 모녀의 모습이 인터넷을 달구었다. 민소매 차림의 엄마는 알록달록한 장화를 신고 긴 갈퀴로 쓰레기를 긁어모으고 있었고 유치원생쯤 돼 보이는 작은딸도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엄마를 거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큰딸도 갈퀴를 들고 태풍이 몰고 온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지나가던 여성 주민 한 분이 아이들에게 '도와줄까?' 하는 뜻을 전해봤는데 아이들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쓰레기 치우기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이 광경을 목격한 주민이 볼일을 보고 한 시간쯤 지나 다시 그 장소를 지나갔을 때도 세 모녀는 여전히 비지땀을 흘리며 쓰레기 치우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그 주민이 동참했고 다른 한국인 엄마와 두 딸도 거들게 되었는데 이 광경이 SNS와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중에 밝혀진 외국인 세 모녀는 부산국제외국인학교의 교사인 디애나 루퍼트 씨와 큰딸 11살 피오나, 그리고 5살짜리 스텔라였다. 세 모녀는 광안리 해변에 나갔다가 백사장을 가득 메운 쓰레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피오나가 어머니에게 "함께 청소하자"고 했고 작은딸 스텔라도 "재미있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자기들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로 돌아가 장화와 고무장갑을 챙기고 철물점에서 청소용 갈퀴를 사서 쓰레기 청소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외국인 세 모녀가 한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누가 알아주기를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태풍이 몰고 온 쓰레기를 보고 더러는 안타까워 하거나 흉물스럽게 여기기도 했을 것이고 구청에 전화해 '왜 쓰레기를 이대로 방치하느냐?'고 따지거나 나무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세 모녀는 남에게서 답을 구하기 전에 스스로 팔을 걷고 문제 해결에 뛰어든 것이다. 물론 우리 시민 중에도 태풍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 넓은 백사장에서 쓰레기 치우기에 앞장선 사람은 이 외국인 세 모녀였다. 그 누가 알아주기를 원한 선행이 아니라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지역을 깨끗하게 만들고 싶다는 아름다운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해변의 쓰레기를 보고 맨 먼저 치우자고 한 사람은 큰딸 피오나였다. 큰딸은 당연히 그의 어머니에게서 정신적 DNA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부모보다 좋은 삶의 교사는 없다. 아이들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도 부모를 닮는다. 우리는 흔히 자식을 농사에 비유한다. 자식 농사를 잘 지었나, 못 지었느냐는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콩을 심었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었으면 당연히 팥이 나는 것이 자연의 평범한 이치이다. '절대로 양보하지 마라' '손해 보면 바보다' '자기 것은 악착같이 챙겨야 살아남는다'는 이기주의적 사고로 가득 찬 사회는 품격이 낮은 사회이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오늘날 세 모녀는 우리에게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예부터 자녀의 결혼을 시킬 때 가문을 매우 중시했다. 어떤 집안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느냐는 것을 통해 후손의 미래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훌륭한 가문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문의 가풍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사례인 경주 최부잣집 300년 비결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철저한 본을 보인 엄격한 가정교육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씨 가문에는 여섯 가지의 가훈이 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 것. 둘째,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말 것. 셋째, 어떤 과객도 후하게 대접할 것. 넷째,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말 것. 다섯째,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을 것. 여섯째,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게 할 것. 최씨 가문은 이를 철칙으로 가르쳤다.

이처럼 스스로 본을 보이는 엄격한 가정이었기에 '부자도 길어야 3대를 가지 못한다'는 옛말에도 불구하고 경주 최부잣집은 12대에 걸쳐 300년 동안 존경받는 부자로 가문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1950년에는 전 재산을 대학에 기증함으로써 사회에 환원하였다.

사자는 사자 새끼를 낳고 쥐는 쥐새끼를 낳는 법이다. 자식을 보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되라고 천만 번 외치는 것보다 부모가 스스로 본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이며, 자녀의 미래는 물론이고 이 사회 이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