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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후배 선혁에게 보내는 독백

조선분야 최선 다한 후배, 구조조정은 그대 탓 아니라오

제2인생 좌절없게 윗분들 상식 통하는 사회 만들어주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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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6-10-27 19:30:4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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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바칠 각오로 십수 년을 지키던 직장에서 떠밀리다시피 나온 후배가 떠오를 때면 왜 이렇게 맘이 괴로운지 모르겠소. 후배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 여겼던 구조조정이 현실이 되었을 때 당황하며 괴로워하던 후배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고 그때 후배가 내뱉던 긴 한숨이 아직도 내 귀에 맴돌고 있소.
   
밤낮으로 부산과 울산을 오가며 고속도로 위에서의 졸음을 쫓지 못하던 당신에 대한 걱정으로 살던 후배 아내의 얼굴이 생각날 때면 더더욱 가슴이 저려 오는구려. 후배가 당한 가혹한 이 현실이 왜 발생했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소. 후배의 무능력이나 불성실 때문이라면 담담히 받아들일 터인데, 그러나 이 현실은 세상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국가와 진정한 자기진단이나 자각을 하지 못했던 회사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감출 수가 없소. 굳이 후배 죄를 꼽으라면 그 회사에 입사했고 회사가 요구하는 일만 묵묵히 수행했다는 것이겠지요. 이런 현실을 어디에 항의 한번 할 수 없다는 것이 후배를 더욱 자책하게 하는 것 같소.

선혁 후배. 내가 아는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살아왔어요. 당장 눈앞에 닥친 1% 때문에 당신이 노력했던 99%를 버리지 말기 바라요.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은 후배 인생의 단 1%에 불과하니 당신의 인생 전체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아요. 후배와 같은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어요. 나도 자유로울 수가 없소. 4~5년 후면 본격적인 인구절벽 시대가 올 거요. 고등학생 수가 지금의 반으로 떨어질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소. 아마 수십 개 대학이 문을 닫고 수천 명의 교수가 옷을 벗어야 할게요. 솔직히 나 또한 몇 년 후의 내 처지가 안타깝고 갑갑한 것이 사실이오. 누가 끌어 안아주었으면 좋겠소. 실직의 아픔 속에서, 지켜주지 못한 아내와 아들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할 이 시대의 모든 가장을 누군가가 따뜻하게 품어주었으면 좋겠소.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여름, 회사를 나와 뭔가 해보려고 하루 15시간 이상을 쫓아다니고 있는 후배를 볼 때마다 당신이 제일 잘 하는 것을 버리고 새 길을 찾으려 하는 당신을 격려하는 내가 자꾸 초라해지는구려. 이십여 년 전 후배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하오. 조선 산업의 세계적인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청운의 꿈으로 초롱초롱하게 빛나던 눈매와 의욕으로 불탔던 당신을 잊을 수가 없소. 지난 만남 때, 당신이 내게 이런 말을 했었지요. 부모님으로부터 한 푼도 물려받지 않은 것이 떳떳한 일이고 자식들에게도 그것을 자랑스레 얘기하곤 했었는데 처지가 이리되다 보니 하늘나라로 떠나신 아버지 어머니가 왜 이리 보고 싶은지, 또 그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왜 이리 그리운지. 후배,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요. 당신의 선택은 멋졌고 또 절대적으로 옳았소. 하지만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과 자식들에게 물려줄 게 없는 사람들은 어찌 살아야 하냐고 울먹이던 후배의 아픔을 견딜 수가 없소.

사랑하는 후배. 며칠 전 누군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소. 로저스 차일드라는 과학자의 '벼룩 실험' 이야기요. 자기 몸의 수백 배 이상을 점프하는 벼룩들을 빈 어항 속에 넣고 위를 유리판으로 막으면 높게 점프를 할 때마다 벼룩들은 유리판과 부딪히며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되고, 그래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벼룩들은 안 부딪칠 정도만 도약을 조절하며 또 유리판을 걷어낸 후에도 벼룩들은 유리판 아래 높이까지만 도약한다는 얘기요. 이 실험은 과거 경험에 매이면 현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새로운 도전의 기회마저 버리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어항 아래에 알코올램프 불꽃을 갖다대면 뜨거운 것을 피하기 위해 벼룩들이 금세 원래 점프를 회복해서 어항을 탈출한다고 해요.

후배. 이전과 같은 열정으로 다시 도전해야 해요. 벼룩의 알코올램프처럼 후배에게 필요한 새로운 원동력을 찾아야 해요. 과거 경험은 영원한 진리가 될 수 없어요. 당신을 높은 곳으로 다시 이끌어 줄 그것을 찾아야 해요. 언제나 내게 자랑스레 말하며 자신만의 꿈을 키웠던 청년 시절 그때보다 더 간절한 심정으로 도전해야 해요.
후배. 넋두리 하나 하리다. 매달 받는 월급이 제일 소중한 평범한 시민으로서 지금 이 세상은 참으로 힘드오. 연일 들려오는 부정부패의 소식들. 지금 추세라면 김영란법 아니 그 어떤 법이 만들어지더라도 우리 사회에서의 부정부패 고리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소. 원래 상위계층의 부패를 잡기 위해 법을 만들었다는데, 이 법 때문에 그나마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했던 작은 정들마저도 송두리째 뺏어 가버리니 아주 당황스럽소. 동료들과 제자들마저도 상호감시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사회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소.

당장의 생계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를 두고 괜한 얘기를 꺼낸 것 같소. 그래도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하리다. 우리 사회가 왜 자꾸 어두워지는지 누가 속 시원히 얘기해주면 좋겠소. 그 원인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꿰뚫고, 전심으로 그것의 해소를 위해 누가 제대로 방향을 잡아주면 좋겠소. 대통령 임기가 5년이든 8년이든, 또 의원들이 단체로 나라를 다스리든 말든 우린 별 상관이 없소. 다만 그들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 주길 바랄 뿐이요.

성장과 발전이 결코 좋은 것만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요. 국민 전체의 삶은 전반적으로 윤택해지는 것 같은데, 나 자신도 그렇고 들려오는 말들이 온통 비판이고 질투밖에 없으니 정말 혼란스럽소. 언젠가부터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란 말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소. 그럼에도 살기가 이리 팍팍한 것은 경제가 한쪽으로 치우쳐 왜곡되어 있고, 경제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외롭고 힘든 사람이 오히려 더 늘어나기 때문일 거요. 앞으로는 무조건적인 성장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소외되고 지쳐가는 사람들의 수를 줄여가는 그런 포용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소. 후배가 겪고 있는 고통을 통해 요즘 내가 절실히 느끼는 거요.

   
후배를 위로하려다 내 독백이 되고 말았구려. 갑자기 후배가 눈물 나도록 그립소. 보고 싶소.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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