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누군가. 천하가 박근혜 대통령의 '입'이고 '복심'이라고 안다.
박 대통령은 이 대표가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승리한 뒤 '당·정·청은 한 몸'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도 입만 열면 "박 대통령의 성공이 곧 새누리당의 성공"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새누리당은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철저히 박 대통령의 의중을 따랐다.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최순실 씨의 국정 관여를 일부 시인했다. 최 씨의 태블릿PC를 언론이 입수한 직후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 온 나라가 절망과 분노로 뒤덮였다. 광화문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고 분노하지 않은 게 아니다. 대학가에는 시국선언이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
외신은 최 씨가 박 대통령을 '샤머니즘'으로 조종했다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이 '무속 광신도'에게 조종당했다고 조롱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제정 러시아 말기 요승 '라스푸틴'까지 거론하며 '막장 드라마 같은 스캔들'이라고 했다. 식민시대의 아픔을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미신을 숭배하는 나라'로 곤두박질쳤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불신과 분노 속에서 청와대 참모진을 교체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로 내정했다. 책임총리에 무게가 실린다. 거국내각까지 갈 것인지는 앞으로 장관교체 과정에서 김 내정자가 실질적인 제청권을 행사하는지가 중요하다. 물론 야당과의 협의 과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헌정 중단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과 야당이 동의할 수 있는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 시스템이 국정을 복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 대통령도 스스로 이 시스템의 뒤편으로 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와중에 국정의 3대 축인 당·정·청 가운데 새누리당만이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 대표는 당내 비박(비박근혜)계와 중도성향 의원들의 퇴진요구를 거부했다. 이 대표는 난파선에서 뛰어내리는 선장이 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사태수습이 먼저라고 했다. 이 대표가 착각하는 지점이다. 사태수습은 최소한의 국민적 신뢰가 있는 주체만이 가능하다. 이 대표의 전대 승리를 두고 많은 사람은 박 대통령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 자신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 박 대통령과 공동 운명체를 자처해온 이 대표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가늠할 수 있는 결과다. 정확게 표현하면 국민은 이 대표를 사태수습을 할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아직 제대로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자고 나면 최 씨가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국정목록이 추가되고 있다. 재단을 만들어 대기업으로부터 뜯은 돈을 빼돌렸다는 수준이 아니다. 국정 전반에 최 씨가 광범위하게 관여했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문화·경제사업은 물론이고 국방 분야까지 최 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사건의 실체는 향후 검찰수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규명될 것이다. 하지만 국정에 대해 무한책임을 진 집권세력은 의혹 하나하나에 대한 법적 책임과는 별도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표를 얻어 주권을 위임받은 자가 책임을 지는 방식이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의혹의 '몸통'으로 의심받는 상황으로부터 이 대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 들어온 이후 10년 이상 '그림자 보좌'를 해왔다. 이 정부 들어서는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번갈아 맡았다. 한 친박계 중진은 이 대표가 최 씨를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단언했다. 최 씨가 박 대통령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몰랐을 리 없다고 했다. 사실 여부는 이 대표 자신만이 알 것이다. 설령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분노한 민심이 이 대표를 비켜 가지는 않는 분위기다. 결국 이 대표에게는 '선택과 결단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남아 있지 않다.
신뢰를 잃은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가 아니다. 국민적 비판과 불신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무엇을 수습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기를 권한다.
서울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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