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바위 보.' 내가 이겼다. 나는 손에 거머쥔 여남은 개의 유리구슬을 흙 땅에 굴렸다. 구슬은, 구슬로 땅에 꾹 눌러 놓았던 반원형 홈으로 빨려 들어갔고, 구멍에 들어간 구슬은 내 차지가 되었다." 어릴 때 무른 흙 바닥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구슬을 굴려 들어가게 하면 이겨서 상대의 구슬을 따는 놀이를 한 기억이다. 구슬치기 놀이에는 적당한 거리에 금을 그어 놓고 그 금에 서서 반원형 구멍에 박아 놓은 구슬을 맞추는 알빼기 놀이도 있었다.

구멍에 박혀 있던 구슬은 던진 구슬에 밀려 구멍에서 튀어 나왔다. 튀어나온 구슬은 구슬을 던진 아이 몫이 되었다. 이따금 땅 바닥에 삼각형을 그려 놓고 그 안에 각자 똑같이 내 놓은 구슬을 모아 놓은 뒤 적당한 거리에서 삼각형 안에 있는 구슬을 향해 다른 구슬을 던지거나 굴리는 놀이도 했다. 던지거나 굴린 구슬이 삼각형 안에 모아 놓은 구슬과 부딪히면 구슬들은 흩어져 삼각형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 삼각형 바깥으로 나간 구슬은 구슬을 던진 아이의 몫이 되었다. 담벼락에 금을 그어 놓고 거기다 구슬을 대고 놓으면 떨어진 구슬이 구르는데, 이때 더 멀리 굴러간 구슬이 이기는 놀이도 했다. 또 구슬을 던져 다른 구슬과의 거리가 한 뼘 안에 들어오면 다른 구슬을 가지는 놀이도 했다. 구슬을 때려 두 구슬이 벌어진 거리의 장단(長短)으로 구슬내기를 하기도 했다.

딱지치기 놀이나 다른 놀이도 많았지만, 흙 땅에서 하는 놀이치고는 구슬치기 놀이가 가장 좋았다. 딱지는 흙 땅에서 치다 보면 흙이 묻고 물이라도 있는 곳에서는 흙탕물이 묻어 지저분해지고 비 오는 날은 딱지가 축축하게 불어 책상 서랍에 넣어 놓을 수 없었지만 구슬은 전천후였기 때문이었다. 구슬치기 놀이는 흙 땅에서 했다. 그래서 온 동네 길거리가 구슬치기 놀이터였고, 어느 아이 집 마당이나 구슬치기 놀이터였다.

구슬만 가지고 있으면 언제라도, 어느 곳에서라도 종일 놀이로 즐거웠다. 그래서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구슬치기 놀이하는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구슬치기 놀이는 흙 땅이 없으면 할 수 없었다. 언젠가 신작로를 만든다고 동네 한가운데를 뻥 뚫어 콘크리트·아스팔트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구슬치기 놀이하던 아이들은 모두 흙 있는 곳만을 찾아 다녔다. 콘크리트길, 아스팔트길에서는 구슬이 부딪혀 쉽게 깨지기 때문이었다. 흙 땅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콘크리트, 아스팔트길이 들어서고부터는 그런 일이 생겼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언제부턴가 구슬치기 놀이 할 흙 땅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어딜 가도 흙 땅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에나 가야 간혹 흙 땅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곳들도 인조잔디를 깔아놓아 흙 땅도 쉽게 찾기 어렵게 되었다. 아이들은 깨끗하고 단정한 환경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기치 아래 어느새 흙이란 놀이터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 개발과 발전의 상징 콘크리트, 아스팔트에게 흙 땅을 몽땅 빼앗겨 버린 것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구슬치기 놀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요즘 아이들은 구슬치기 놀이를 할 줄도 모르고 흙 땅에서 놀지도 않는다. 놀 흙 땅이 없기도 하겠거니와 흙 땅에서 놀아본 경험도 없다. 시골은 시골대로 아이들이 없어 그렇고, 도시의 아이들은 흙 땅이 없어 놀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종일 방안에 틀어 박혀 컴퓨터 놀이에 매달리거나 학원에 가기 바쁘다.

위생가설(Hygiene Hypothesis)이란 말이 있다.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이 오히려 면역 체계의 정상적인 발달을 막아 알레르기와 감염병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많은 아토피와 천식이 후진국 아이들에게는 거의 생기지 않는 현상에서 출발한 가설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어른들이 아이였을 때는 흙운동장이나 흙골목에서 놀아서 그런지 그런 선진국병(?)이 덜 생긴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내 또래 아이들이 그런 병들로 고생한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적당한 외부환경의 노출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정상적으로 발달시킨다고 하니 흙을 만지고 흙에서 놀던 아이 때가 더 건강할 수도 있다는 말과도 같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나 시골 어디를 가도 흙길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흙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은 없다. 동네 어린이놀이터도 친환경 소재라는 우레탄으로 흙 땅을 뒤덮어 놓았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어머니들의 잔소리도 많이 줄었다. 허구한 날 옷에 흙을 묻히고 들어오니 빨래가 줄지 않는다는 푸념 말이다.

이따금 콘크리트길, 아스팔트길에 가만히 귀를 대 보면 콘크리트, 아스팔트 한 꺼풀 밑에서 흙이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숨을 쉴 수 없다고. 답답해 견딜 수 없다고. 아이들이 자기를 밟으며 술래잡기도 하고 다방구도 하고 비석치기도 하고 딱지도 치고 뛰어다니며 구슬치기 놀이도 해 달라고 서럽게 우는소리 말이다.

시인·경남과학기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