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전국의 성난 민심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쳤다. 이런 가운데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인물들이 속속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황태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핵심 인물로 꼽히고 있는 차은택 CF 감독은 행방조차 묘연한 상황이다.

차 감독은 최순실 씨와 함께 미르 재단 등의 설립과 운영에 개입해 왔으며, 현 정부의 문화융성위원회 위원과 창조경제추진단장 등 문화 관련 정부 직책을 맡으면서 각종 사업의 이권은 물론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과 인사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차 감독이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영화·방송계의 충격은 더 커졌다. CJ그룹의 계열사인 CJ E&M은 영화와 케이블 방송계 1위의 절대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CGV는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129개 극장, 974개 스크린)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 있는 이 부회장은 2014년 10월 해외로 떠났다.

당시 영화·방송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진 이유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개봉됐고, tvN 'SNL 코리아'에서 박 대통령을 풍자해 현 정부에게 밉보인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일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CJ엔터테인먼트는 '명량'(2014) '국제시장'(2014) '연평해전'(2015) '인천상륙작전'(2016) 등 보수 색채가 있는 대작을 내놓았다.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나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 모두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지만, 광고를 통해 '창조경제'를 응원하는 CJ그룹이 현 정부의 입맛에 맞는 영화에 투자했다는 의혹은 남았다.

그런데도 한 번 밉보인 이 부회장은 퇴진했고, 이후 CJ그룹이 추진한 문화창조벤처단지 프로젝트와 문화창조융합벨트의 핵심인 K-컬처밸리 사업을 차 감독이 주도했다.

최 씨와 차 감독이 문화체육관광부의 다양한 사업은 물론 민간 기업의 인사 및 사업에 개입해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으로 문화계 전체가 그들의 먹잇감이 된 듯하다. '문화창조' 대신 '문화 비리 창고'가 구설에 올랐다. 대중이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 않다.

한 문화계 인사는 "한국의 다양한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이었는데,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해 왜곡된 시선으로 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투명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서울 문화부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