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부산 동인고 13기 졸업생 중 한 명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현 시국에 대한 의견 광고를 내고 싶다는 것이다.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이 즉각 물러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라는 것이다. 41명이 연명한 시국선언문에서 '반세기 전 아버지가 총칼로 유린한 대한민국을 박 대통령이 무능과 파렴치로 다시 짓밟았다. 박근혜에게서는 어떤 사과도 필요 없다. 물러나라. 우리에게 희망을 돌려줄 새 정부를 즉시 구성하라. 생업에 바쁘지만 아이들에게 물려줄 긍지를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40대 후반의 이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하였을까. 평범한 가장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게 한 동력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역대 대통령의 하야나 퇴진을 보자. 이승만 대통령은 3·15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됐다. 장기집권하려는 야욕이 원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4·19 혁명이 일어났다. 버티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여러 번 개헌까지 단행하며 영구 집권 음모를 버리지 않았다. 결국 곪아 터진 권력은 10·26의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역시 총칼로 집권한 군사독재 전두환 정권도 장기집권의 야욕을 버리지 못했다. 독재에 분노한 국민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일어나자 전두환은 권력을 이양했다. 노태우 정권 이후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었다. 공과가 있지만, 국민은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탄핵된 적이 있지만, 국민의 뜻이라기보다 정치적 술수에 말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본다.
근데 이번에는 다르다.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이 자리에서 즉각 물러나라고 한다. 그동안 사태를 살펴보면 이것은 '쪽 팔림'에 가깝다. 한 줌도 안 되는 '이상한' 아줌마에게 국정의 주도권을 맡긴 대통령을 보니 너무 한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대통령인 줄 알았다면 아예 표를 주지 않았을 터라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주말 생신이어서 골수 여당 편인 부모님과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여쭤봤다. "지금도 대통령 찍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쪽 팔려서 어디 말도 못 하겠다. 내 이런 줄 진작 몰랐다니….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푸념했다. 어머니는 강도가 다소 약했지만 "후회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대통령이)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100만 명이 광화문에 나가고, 고교 동기들이 신문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노인이 대통령에 투표한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모두 하나로 귀결된다. 60세 아줌마가 '비선 실세'로서 국정을 농단할 정도로 대통령이 무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에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만평이 실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뇌에 최순실이 들어가 대통령을 조정하는 그림이다. 외국인이 어찌 저리도 한국 문제를 잘 알까 놀라웠다.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의 무능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304명이 정부를 믿고 구조를 기다리다 그대로 수장됐다. 아직도 대통령은 그때 7시간 뭘 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 대통령의 변호인이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이해해달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이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미용과 관련된 시술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과 함께 대통령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역시 16일 국회에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조기 대선을 주장했다. 국민이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겠는데 대권 주자는 이제야 국민의 마음을 알았나 보다. 어떻게 대통령을 하겠다는 건지 미덥지 못하다.
지난달 24일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PC를 폭로하면서 시작된 '대통령 게이트'가 20일이 지났다. 대통령은 아직도 국민의 마음을 모른 채 유체이탈 화법을 써 가며 자기 잘못은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다. 대통령을 잘 아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5000만 명이 요구해도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대통령은 국민이 정말 화난 모습을 보고 싶은가.
디지털뉴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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