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청와대 게이트'가 불거진 지 벌써 한 달.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부산 울산 경남(PK) 의원들의 행보는 세 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지역 활동과 고유의 입법 업무에 매진하는 유형을 들 수 있다. 이번 주에도 지역 의원들이 주최한 이러저러한 토론회가 여러 건 열렸고, 그냥저냥 활동한 데 대한 보도자료도 생산해냈다.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두고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데 이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씁쓸하다는 느낌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실상 '국란(國亂)'에 준하는 이번 사태에 대한 '침묵'이다. 국회의원의 권한을 '현실 도피'에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비겁하다"는 혹평을 내놓고 있다. 해당 의원들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따끔한 지적이다.

반대로 이번 사태의 중심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부류도 있다. 주로 PK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이 해당한다. 어떤 의원은 '최순실 국정 농단 피해 사례 제보를 받는다'는 등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계 공격의 가장 앞줄에 서 있다. 이들 중 일부는 4·13총선 공천 때 누구보다 '친박 코드 맞추기'에 열성이었다. 근본적인 수습책 제시보다는 시류에 편성하는 '정치 기술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활동을 최소화하고 사실상의 '칩거'에 들어간 부류다. PK 친박계 의원들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박 대통령의 측근, 친박 실세임을 자랑하고 다녔던 인사들인데 "최순실이 누구냐"는 것이 한결같은 반응이다.

전혀 다른 듯한 행보를 보이는 PK 의원들의 계산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느냐다. 그런데 이들 의원의 언행에서 국란에 처한 나라를 걱정하는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민의를 대변해 달라고 지역민들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지위와 권한으로 정치적 셈법에만 몰두하는 모습에 서글픔마저 든다.

35년간 여권의 텃밭으로 인식됐던 PK는 지난 4·13총선을 계기로 변화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청와대 게이트' 국면에서 서울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한 지점이다. 특히 부산 서면은 서울 광화문과 함께 촛불 민심을 이끌고 있는 두 축이다. 지난 19일 제4차 촛불집회에 10만 명이 모여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최순실 씨 등과의 '공범'으로 적시하면서 이번 주말 예정된 촛불집회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시민들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열리는 시위는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갖가지 추가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와중에 청와대가 민심과 정면 대결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사고'에 대한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시민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새누리당 PK 의원들은 현 정권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청와대 게이트에 대한 책임도 피할 수 없다. 계파를 가릴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오직 국민만 보고 사태 수습에 주도적으로 나서라. '강 건너 불구경'하거나 '정치적 잇속 챙기기'에만 몰두한다고 '국란의 폭풍'이 비껴가지 않는다. 헌정 사상 초유의 국란 사태에서 PK 의원들이 보여주는 행태를 지역민들은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청와대를 겨냥한 촛불이 지역 의원들에게로 향할때 햇불로 변할 수도 있다.

서울정치부 차장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