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노래, 노름은 한 형제다. 노래는 '놀애'에서 바뀐 말이다. 놀애는 '놀다(遊)'란 뜻의 동사어간 '놀'에 명사화된 접미사 '애'가 붙은 것이다. 노름의 옛말도 '놀음'이었다. 그러다 놀애처럼 이름이 바뀌었다. 삼형제 중 노름만 나쁜 돌연변이다. 아예 가출까지 했다. 그러니 집에 남은 놀이와 노래는 더욱 의지하게 됐다. 산책길에 자기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어로빅운동도 노래가 있어야 흥겹다. 월드컵 축구 열기도 응원가로 더 달궈진다.
맏형인 놀이는 가장 착한 스포츠다. 스포츠는 '데스포르(desport)'라는 프랑스 말에서 생겼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신체나 정신의 활동'이란 뜻이다. 승리제일주의에 빠져 인간을 경쟁 도구로 전락시킨 스포츠는 그 본질을 어긴 활동이다. 본질을 어길수록 약물을 복용하고 승부도 조작한다. 이것은 스포츠의 나쁜 돌연변이다. 노름이다. 놀이는 스포츠의 본질이고 인간의 본능이다. 중국 문학가 린위탕은 말했다. "사람은 이유 없이 논다. 노는 것 자체가 훌륭한 이유다"라고. 놀이학의 원조인 네덜란드의 하위징아도 '놀이는 즐겁고 자유로운 활동'이라 했다. 독일의 문학가 쉴러는 '인간은 놀아야 인간'이라 했다. 데카르트식으로 이렇게 표현해도 좋겠다. "나는 논다. 고로 존재한다."

인류는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작업하는 '호모 파베르'를 거쳤다. 이제 놀이하는 '호모 루덴스' 시대로 옮겨가는 중이다. 중세에 신의 교리를 맹종했던 인간은 근대에 들어 자성하며 진리를 추구했다. 이때를 호모 사피엔스 시대라 부른다. 이후 산업혁명과 함께 인간의 가치를 작업능력으로 매겼다. 인간이 생산도구로 전락한 호모 파베르 시대였다. 그러나 최근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새로운 르네상스가 일고 있다. 바야흐로 호모 루덴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놀이에 대한 시각이 사뭇 달라졌다. '노는 것도 경쟁력'이란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공부도 잘한다"고 말한다. 이솝우화의 개미 일꾼보다는 베짱이 놀이꾼 관점에서 삶을 재해석하기도 한다. 열심히 일만 했던 개미는 결국 관절염에 걸려 말년에 병원 신세를 지고, 노래 부르며 놀던 베짱이는 음반이 대박 났다는 얘기다. 최근 놀이가 체력과 뇌력을 키우는 데 탁월하다는 보고가 많다. 이뿐인가. 놀이는 인간의 착한 본성을 되살려준다. 함께 노는 가족은 그렇지 않은 가족보다 행복감과 결속력이 세 배나 더 크다. 경제소득도 덩달아 오른다. 놀이치료는 곧 신성장 분야가 될 거다.

지난가을 우리는 또 슬픈 성적표를 받았다. OECD의 '한눈에 보는 사회상(Society at a Glance)'이다. 총 25개 항목 중 '취약'과 '최악'이 무려 16개나 됐다. 출산율, 실업률, 행복감, 노인빈곤대책은 늘 바닥 수준이다. 건강, 정부신뢰, 미래불안, 50대 고립감 항목도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요즘 국내외 정세 불안과 경기침체로 국민의 무기력증과 화병이 더 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식비, 의료비, 사교육비 등 가계지출은 뚝 떨어졌다. 반면 술 소비만 지난해보다 13%나 껑충 올랐다. 한 편의점은 어느 열흘간 소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나 폭등했다고 밝혔다. 최순실 비리가 들통났던 바로 그 시기였다. 늘 홧술을 마셔댔던 IMF 외환위기 시절. 그때 2조 원이던 주세는 올 연말 4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술이라도 마셔야…"란 말을 백번 공감하는 요즘이다. 그러나 술은 무기력증에 좋은 활력소가 아니다. 화병치료제도 아니다. 이 판국에 놀 일도 놀 마음도 없다지만, 어디 행복해서 웃는가. 웃다 보니 행복해지는 게지. 술을 줄이고 좀 놀아보면 어떨까. 기분도 전환하고 활력도 되찾아 보자. 이 갑갑한 겨울을 그렇게 보내고 희망찬 새봄을 힘차게 맞아야지.

부산교육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