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온 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중앙에 주로 활동하다 이곳에서 기업인들을 만나면서 중소기업청과 고객인 중소기업 간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알고 여태껏 공직생활을 헛되게 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중소기업청 정책을 고객인 부산의 중소기업들은 아예 모르든지, 대개는 관심이 없었다.
수도권 지역의 중소기업들과 달리 부산의 중소기업들은 중소기업청의 상품인 중소기업정책을 구매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청의 상품은 무료든지, 심지어는 마이너스(-) 가격이라서 중소기업청 상품 구매는 중소기업에 금전적인 이익을 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중소기업이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청은 존재한다. 나와 내 가족을 먹고살게 해주는 월급을 나는 매달 받는데, 이 월급에 보답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고객인 중소기업이 잘 커나가는 데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이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0여 년간 중앙무대에서 정책 개발에만 몰두하고 정책 세일에는 등한시했다는 후회를 하였다. 물건을 만들면 뭐하는가?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만드는 기업은 망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정작 나는 안 팔리는 정책을 만들었고 만든 정책을 기업들이 활용하게 세일 활동을 안 했던 셈이다.
지방청장으로 부산에 와서 지금까지의 잘못을 뉘우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하고는 은근한 기쁨에 밤잠을 설쳤다. 당장 우리 부산의 기업들이 정책을 활용 안 하는 원인 분석했다. 그 원인은 정책 공급자인 중소기업청 잘못도 있고 물건을 안 사가는 기업 잘못도 있다. 우선 정책이 너무 많고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정책을 입안한 공무원이 볼 때는 각자 하다 보니 가짓수가 너무 많다. 실제 연간 5000여 개의 상품이 있다고 공고한다.
중소기업청 외에 대부분 부처가 중소기업 상품을 제조해 알린다. 시·도 등 지자체도 여기에 한몫해 더 보태고 있다. 두꺼운 책 한 권이 된다. 어느 중소기업들이 이걸 보겠는가. 내용도 기업이 볼 때는 전문용어라고 생각돼 이해하기도 어렵다.
중소기업정책 고객인 기업도 잘못이 있다. 관청의 문턱이 높다고 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관청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중소기업청 공무원들은 고객에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중소기업들이 우리를 멀리한다고 불평한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별개의 세상에 사는 사람(공무원)이라고 불평한다.
그동안 부산중소기업청은 전 직원이 모두 정책세일즈맨이 돼 우리 상품을 알리고 이를 적극 판매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노력해 왔다. 현장에서 고객인 기업들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정책은 본청에 알려 고치는 일부터 시작했다. 시장에서 통용 안 되는 상품을 없애든지 개선하고 있다. 요즘 중소기업청은 본청 회의할 때 지방청에서 꼬박꼬박 화상회의로 참석해 현장의 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본청에서 고치고, 개선하라고.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나 많은 정책을 기업에 다 외우라는 강요를 안 하기로 했다. 기업마다 원하는 메뉴나 상품이 다 다르다. 5000여 개의 정책을 다 활용하는 기업은 없다. 재미없고 두꺼운 책을 대신하여 인기 있는 100개의 정책을 엄선해 포켓북 형태로 배포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참석하게 하는 설명회보다는 상담 위주로 변경했다. 또한 소수의 기업이 참석하는 현장에서 즉시 해결하는 간담회, 개별기업 방문, SNS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정책 세일을 하고 개별 중소기업들의 건별 어려움을 해소해 주려고 하고 있다. 부산국세청과 협조해 사업자 등록이나 세금상담하러 오는 분들을 대상으로 세무서에 정책안내 소책자도 비치해 정책 세일을 하고 있다.
관청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 축사나 인사말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1357 상담시범과 우리 중소기업 상품을 사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청사 내에 북카페도 만들어 휴식공간도 제공하고 있으며 풋살장도 개방하고 있다. 인근 근로자들을 위해 심지어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글자가 크고 쉬운 아동 도서까지 비치해 놓고 위로 공연 개최는 물론 기업행사에 사용하라고 강당과 회의실도 빌려주고 있다. 우리는 안다. 기업과 정부의 간격을 좁히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부산의 중소기업들이 중소기업청과 더 가까이 지냈으면 한다.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 때문에 있는 존재라서 우리의 상품을 많이 사 주어야 한다.
부산중소기업청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