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는 게 두려운 걸까. 사랑의 반대가 무관심이라고 하듯이. 지극히 평범한 인간관계의 진리다. 보통 사람도 그러한데, 하물며 정치인은 말해 뭐하랴. 표를, 여론을 먹고사는 이들이기에.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게 곧 정치 생명 사망선고로 느껴질 법하다.

그런데 희한한 게 세상사다. 세상 사람의 관심 밖일 때가 사는 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김수영 시인의 '풀')라고 하지 않았나. 때로는 납작 엎드려 있는 게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여기에는 '참고 견딤'이란 미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니, 실천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고 하지 않았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 나갈 때와 들어갈 때, 승패의 분수령이 되고는 한다. 때를 잘 읽는 게 '뜨고' '짐'이 극심한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인터넷이 세상일을 빛의 속도로 전파하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여론 형성은 한순간이고 정치인의 부침도 눈 깜짝하는 사이 이뤄지니, 순간의 선택이 정치 생명을 가르기도 한다.

인터넷 확장성의 무서움을 처음 깨달은 것은 2000년 4월이었다. 16대 4·13총선의 개표 다음 날인 14일 새벽 부산 북·강서을에서 낙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캠프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 소속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지역구인 종로를 버리고 북·강서을에 출마했다. 하지만 영남이라는 지역 벽을 넘지 못했다. 캠프 관계자는 "낙선했지만, 실패한 것은 아니다. 지역주의에 맞선 노무현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네티즌의 움직임을 챙겨봐 달라.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그 이후 알았다. 노 전 대통령 선거 캠프는 낙선이 확정된 순간부터 밤새 바쁘게 움직였던 사실을. 네티즌의 움직임을 방송 신문사 등 오프라인 매체에 신속하게 전했다.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놀랐다. 인터넷이 전달하는 메시지의 폭발력을. 이를 재빠르게 활용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인 감각은 승부사적 기질을 느끼게 한다. 인터넷은 노사모를 결집시키는 공간이었다.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이 대권주자로 이름을 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참여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을 키운 것은 팔 할이 인터넷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16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사이 인터넷은 정치 아고라가 됐다. 이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정치인과 대중을 연결하는 열린 광장이다. 그중 페이스북은 정치인이 하는 가장 많이 애용하는 공간이다. 하루 사용자 10억여 명. 세계 인구 7명 중 1명이 하루 1번 이상 페이스북에 로그인한다고 하니, 그만한 열린 정치 무대가 어디 있겠나. 최근엔 이재명 성남시장이 페이스북 정치로 재미를 좀 봤다. 유력 야권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상의 관심이 온통 '탄핵 정국'에 쏠려 있는 틈을 타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전파한 덕이다.

이에 자극받은 탓일까. 아니면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에 자기 존재가 묻히는 게 두려웠을까.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인터넷 정치가 요즘 뜨겁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차기 대권을 노리는 단체장의 활동이 더욱 활발하다. 이들은 중앙과 벌어져 있는 공간적 틈새를 인터넷으로 메우려는 것 같다.

경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탄핵정국을 맞아 페이스북 정치를 지난달 11일 재개해 주목을 받았다. 도정에 전념한다는 이유로 중단한 지 2개월 만이었다. 그 이후 홍 지사는 지난 5일까지 8건의 글을 쏟아냈다. 특히 홍 지사는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죽을죄를 지은 게 아니지 않느냐"라는 요지의 글을 올려 찬반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안상수 창원시장도 경쟁하듯 글을 올렸다. 대통령 탄핵, 개헌, 새누리당 해체, '김영란법' 개정 등등. 안 시장은 페이스북을 활용해 정기적으로 시국 등과 관련한 생방송도 진행하고 있다.

편협한 개인적 감성의 한계일까. 단체장의 인터넷 정치가 또 다른 '중앙바라기'로 비쳤다. 인터넷 정치 공간에서 지역은 가볍게 여겨지고,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다. 인터넷이 꼭 중앙 정치로 통하는 광장만이 아닌데, 도정이나 시정은 페이스북 정치의 소재가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중앙정치에 올인하는 듯한 이재명 시장을 보고서는 지역 살림은 언제 챙기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신분상승(?)이란 잿밥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닌가. 노파심이다.

더욱이 볕이 강하면 그늘이 더 짙은 게 세상 이치다. 인터넷의 폭발적인 확장성도 꼭 비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다. 댓글의 세가 밀리면 빛의 속도로 추락하기도 한다. '끼리끼리' 주고받는 글에 매몰돼 시대 흐름을 오판한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뜨고 짐의 관건은 내용이다.

경남취재본부장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