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류에게 가장 유용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금속재료는 철(Iron, Fe)이다. 철은 땅속에 있는 광물 중에서 반도체 재료인 규소(Silicon, Si), 경량금속인 알루미늄(Aluminum, Al) 다음으로 풍부하여 가격이 싸며, 경제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또 어떤 금속보다도 매우 강한 성질을 지니고 있고, 다른 원소들과 합금도 잘 형성해 활용범위가 가정 생활용품에서부터 산업기계 토목 건축 공장건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인류사에서 철을 잘 다스리는 민족과 국가는 지역의 지배자가 되거나 역사의 지배자가 되었다. 철기시대는 청동기를 제압하는 더 강한 철제 무기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증기기관 자체의 핵심소재인 철을 잘 다루지 못했다면, 그리고 철을 바탕으로 한 조선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면 대영제국은 완성되지 않았다. 독일의 막강한 제국주의도 타이거 탱크나 U보트와 같은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강철 제조 능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통적으로 우수한 철을 잘 만들어 고대 중국과 일본에도 수출했으며, 현재는 세계 최고의 POSCO라는 철강회사를 가지고 있어, 산업발전을 급속도로 이룰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10위의 무역강국이 될 수 있었다. 한 국가의 산업 발전에는 철의 흐름이 얼마나 잘 원활하게 움직이냐와도 직접 관계되는데 이는 흥미롭게도 우리 인체의 건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피의 흐름과도 유사하다. 건강한 사람은 혈관에서 피의 흐름이 막힘없이 잘 흘러야 한다. 피가 막힌다면 심근경색 혹은 뇌졸중에 걸린다. 그런데 피의 핵심성분인 적혈구는 우연히도 철 원소로 이루어진 헤모글로빈이다. 인체에 신선한 피가 원활하게 공급되면 건강한 것처럼 철과 철제품이 국가산업 체계에 잘 흐른다면 한 국가의 산업 경쟁력은 강력하다.
하지만 이러한 철제품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철은 대기 중 혹은 해수(바닷물)에서 급격히 산소와 반응해 녹(綠, Rust) 즉 산화가 된다는 것이다. 철제품이 산화가 되어 시뻘겋게 색상이 변하고, 이후 제품의 손실이 일어나는 부식이 진행되면 그 제품을 사용할 수 없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산업 현장에서 녹, 산화, 부식 등에 의한 산업손실은 전체 산업생산(GNP)의 6%이고, 약 1조 달러(매년 1000조 원 이상)에 이른다. 따라서 철제품은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잘 부식을 막느냐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철의 산화를 잘 막는 방법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쉬운 방법은 철에 함금원소로 Cr, Ni를 10% 이상씩 넣어 합금화 처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철제품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 칼 등의 주방용품에 사용되는 스테인리스강(Stainless Steel)이다. 통상 가정집에서 사용되는 스테인리스강은 Cr, Ni이 각각 18%, 10% 들어간다. 주변에 나이프나 포크 뒷면을 보면 숫자가 18-10이라고 적혀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합금원소 비율을 뜻한다. 또 다른 방법은 철보다 더 부식이 잘되는 금속을 코팅처리하여 철의 산화를 억제하는(이를 금속공학에서는 희생양극처리라고 함) 방법을 적용한 아연도금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앞서 산업에서 철의 흐름이 인체에서는 피의 흐름과 일치하는 것처럼,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우연이 있다. 철의 산화를 막는 것이 철제품을 얼마나 오래 쓰느냐가 결정되는 것처럼, 이것은 우리 인체의 노화를 막는 과정과 일치한다.
철강제품의 활용에서 최고의 숙제는 산화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철강재료를 만드는 것이고, 생명 연장에 관한 인류의 꿈은 인체의 산화작용을 최대한 억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산화가 억제되는 철강제품 설계와 인간 노화를 막아내는 의학기술에는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철강제품과 인체의 산화현상은 우리가 사는 사회시스템에서도 항상 일어난다. 즉 거대한 조직 내에서의 부정(不正)과 부패(腐敗)가 바로 그것이다. 부정과 부패는 결국 우리 사회를 산화, 부식시키고 결국에는 사회시스템의 붕괴를 일으킨다. 최근에 국내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정치적 부정, 부패가 이런 현상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결국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재료공학에서와 같이 사회시스템에서도 결국 산화를 막아야 할 것이다.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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