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병을 자주 앓는 사람은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잔병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건강을 챙겨서 큰 병에 걸리지 않아서 오래 산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런 통계가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암 등록 통계 자료를 보면 2014년도 갑상선 암의 5년 상대 생존율이 100.2%이다. 즉 갑상선 암에 걸리면 걸리지 않은 일반인보다 생존 확률이 더 높다는 말이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건강관리에 신경 쓰고 몸에 나쁜 것은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분들이 안타깝게도 급사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대한의학회지 지난해 11월에 한국인을 괴롭히는 질병 2위가 필자의 전공인 요통(1위는 당뇨병)이라고 발표되었다. 요통의 흔한 원인인 허리 디스크나 척추관 협착증, 척추전방전위증 등의 경우 갑자기 악화되는 경우보다는 퇴행성 변화에 의해 점차 악화되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심하지 않은 환자에게 퇴행성 변화에 의해 척추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을 하면 처음에는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이지만 자신의 척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대부분의 환자는 조심하고 운동도 한다. 필자의 환자 중에는 수술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척추전방전위증을 앓고 있지만 수술 없이 15년 이상 정기 검진만 받아오고 있는 분도 있다. 척추관 협착증 수술을 받은 노인 환자가 더 오래 산다는 국제학회 보고도 있다. 수술받기 전에는 잘 걷지 못하여 골다공증, 허리 및 다리 근력 약화뿐 아니라 심폐기능에도 악영향을 줬는데 수술을 한 후에는 활동성이 좋아져 전신 상태가 호전되고, 수술을 받았다는 충격으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어떤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말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통증클리닉 등에서 척추 주사를 맞고 효과를 본다는 것은 증상 호전 면에서는 좋지만 척추에 확실히 병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술 부위를 결정할 때 척추 신경근 차단술을 해서 효과가 있는 부위를 수술하게 된다. 물건을 들다가 허리가 뜨끔해서 꼼짝도 못하는 허리 염좌의 경우 물리·약물치료 등으로 증상이 호전될 수 있지만 이것은 증상 호전일뿐 늘어난 인대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진통제를 먹고 증상이 좋아지면 자신의 몸은 염좌가 나은 줄로 알고 무의식적으로 함부로 움직이게 되어 염좌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허리디스크나 협착증 같은 퇴행성 변화가 오지 않는다고 전부 다 좋다고 할 수도 없다. 강직성 척추염이란 병은 척추가 서서히 굳어가는 병인데 허리 디스크나 협착증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허리의 유연성은 필요하지만 과도한 유연성은 퇴행성 변화를 악화시킨다. 어릴 때부터 기계 체조를 한 선수는 척추전방전위증의 흔한 형태인 협부형 전위증이 더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사이토 마사시 저 '골프가 내 몸을 망친다'에서 언급되었고 필자의 환자 중에도 있지만 척추의 유연성이 좋아서 드라이버 거리를 자랑하는 사람의 허리는 나이에 비해 퇴행성 변화가 더 심하다.

우리 몸의 기둥인 척추에 오는 많은 퇴행성 질환은 그 자체로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할 수도 없으며, 치료를 해서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해서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필자의 환자 중에, 자기 관리가 매우 철저했는데 척추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니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생길 정도로 실망하는 환자가 있었다. 필자는 그 환자에게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는 없지만 관리를 잘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기둥이 무너져 내리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걸려 있다. 오랜 시간 단련된, 굳은살이 배긴 손이 힘든 일을 더 잘할 수 있고, 높은 온도로 구워진 벽돌이 더 튼튼한 것처럼 우리들은 지금은 아프지만 앞으로 치료하고 관리하면 더 튼튼해질 수 있다고 우리들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몸이든 국가든 관리를 잘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박원욱병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