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미국 지질학자 페르디난드 헤이든은 정부의 후원을 받아 서부 옐로스톤지역으로 탐험대를 이끌고 떠났다. 그가 이 탐사에서 본 것은 거대한 협곡을 가르고 쏟아지는 폭포, 웅장한 간헐천의 분출, 늑대와 회색곰 등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지질과 다양한 생물상이었다. 그가 이끈 헤이든 지질탐험대는 탐사 결과를 당시로는 보기 드문 사진과 그림을 곁들인 방대한 보고서로 엮어냈다.

공유지를 매각하려던 미국 의회는 이 보고서의 영향으로 옐로스톤 지역을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어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은 옐로스톤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미국 국립공원의 탄생이 이러했다.

헤이든은 옐로스톤이 돈으로는 가치를 잴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꼈고 그 가치는 미래에 더 높아질 것이라는 걸 이미 알았다. 헤이든의 노력으로 탄생한 미국 최초, 최대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시작으로 미국에는 오늘날까지 33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됐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갈등을 겪으면서 국립공원이 지향하는 바를 정립할 수 있었다. 1892년 자연주의자이자 작가였던 존 뮤어는 지금은 미국 최대의 환경보호단체가 된 시에라클럽을 결성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축소 법안을 제출한 개발론자들과 맞서기 위해서였다. 시에라클럽은 7년의 싸움 끝에 승리해 국립공원 관리를 강화하고 그 관리권이 연방정부로 옮겨가는 성과를 올렸다.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뮤어는 처음 뜻을 함께한 훗날의 초대 산림청장 기퍼드 핀쇼와 갈라선다. 국립공원의 지향점에서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핀쇼는 후세의 공원 이용을 고려한 '보호'를 주장한 반면 뮤어는 있는 그대로를 후세에 물려주자는 '보존'을 주장했다. 논쟁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뮤어가 판정승을 거뒀고 미국은 엄격하게 보호되는 국립공원 체제를 갖췄다.

미국 국립공원 제도를 본떠 우리나라에서 처음 지정된 지리산 국립공원이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반기고 축하할 일이지만 요즘 지리산을 둘러싸고 또다시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천왕봉 주변을 잇는 케이블카 사업이 다시 들썩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두 차례 무산됐던 케이블카 사업을 경남도는 다시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 연말에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부결됐다. 여기서도 지자체는 사업 재추진을 천명했다. 지리산과 설악산이라는 우리나라 대표 명산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되풀이되는 케이블카 논란을 지켜보면 우리 국립공원은 보호와 보존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개발과 보호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듯하다.

미국의 국립공원 제도는 인간에 의해 망가지는 자연에 대한 각성에서 태동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서구에서 후손에게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전해주자는 발상을 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강조해온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수많은 시설물이 들어서고 탐방로는 포장되다시피 하고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 이후 지난해 8월 추가된 태백산 국립공원까지 우리나라에는 모두 22곳이 지정되는 동안 국립공원은 자연공원법에 규정한 대로 '우리나라의 자연 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으로 가치 있는 생태자원을 지키고 국민에게는 휴식과 휴양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국립공원 개발을 두고 되풀이되는 논란을 지켜보노라면 관리 주체인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환경부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개발을 바라는 지자체와 주민, 환경훼손을 우려하는 환경단체의 목소리만 크다. 그런 과정에서 국립공원의 참다운 역할과 의미를 추구하는 일은 뒷전이 된 듯하다.

자연보호와 생물종 보존을 지원하는 국제기구인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인간의 개발과 점용에 의해 물리적으로 변화되지 않은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국립공원을 정의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이를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50돌을 맞은 의미 있는 해인 만큼 국립공원과 지리산을 기념하고 되새기는 행사도 필요하겠지만 국립공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목표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해 보인다.

스포츠레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