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되돌려보자. 청소년 인문서점 인디고서원은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문예지 선정사업과 문화융성위원회의 청소년 인문학 교육 사업에서 탈락했다. 정부 사업에 연속 선정됐었고 평가도 좋았기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문체부 해당 부서의 대답은 느슨하고 답답했다. 누군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잡지는 모두 탈락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속 시원히 사정을 밝힐 수 없었다.

같은 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앞두고 BIFF 사무국은 부산시로부터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철회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BIFF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이를 강행했고,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BIFF는 시의 대대적인 지도 점검과 이듬해 영화진흥위원회의 국고 보조금 절반 삭감이란 후폭풍을 맞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수사하고 있는 특검은 정부가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을 가려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특검 수사에서 청와대 관계자가 BIFF의 정부 지원 예산 삭감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한 예술인과 예술단체가 각종 정부 사업에서 배제된 것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실제 세월호 진상 규명 촉구에 동참한 부산의 영화인과 부산민예총, 부산작가회의 관계자들이 몇 년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전 국민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분노하고 있는 지금, 예술인들의 심경은 어떨까. 몇 년 전부터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분노와 눈물을 쏟아냈던 그들은 지금 '차가운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한 예술인의 "눈물과 한탄으로 분노를 삭인 지 몇 년째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짓밟은 경위를 밝혀내고, 이를 어떻게 바꾸는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이를 함축한다. 예술인들은 "이번만큼은 제발 밝혀달라"고 요구한다. 문화예술을 짓밟은 '윗선'과 영혼 없이 명령에 따른 공무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익을 챙기려 한 탐욕에 눈먼 자들이 저지른 짓을 제대로 밝히고, 그들이 벌인 일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도록 처벌해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분노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경고도 함께 보낸다.

사회의 약자를 끌어안고 시대의 부조리를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공공의 지원에서 배제된 예술인의 차가운 분노가 성난 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제라도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모든 부분을 재정비해야 한다. 추운 겨울에도 식지 않는 광장의 촛불이 이를 요구하고 있다.

문화부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