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귀환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본격 광폭 행보를 이어가며 대선 전쟁의 서막을 올렸다. 뉴스의 중심에 선 그에게 먼저 궁금한 게 하나 있다. '기름장어'라는 별명이 붙은 연유다. 떠도는 설은 극과 극이다. 몸을 사리는 기회주의적 처신 때문이라는 말이 있고, 일을 매끄럽게 잘 처리해서 지어줬다는 얘기도 들린다. 까다로운 질문에도 기분 나쁘지 않게 빠져나가서 그렇게 됐다는 설도 있다. 한낱 별명에 왜 이렇게 이유가 혼재돼 있을까. 그에 대한 아리송함을 키우는 단어다. 어느 쪽인지는 머지않아 확인될 터. 가볍지만 무거울 수 있는 반 전 총장에 대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알 듯 모를 듯한 반 전 총장이기에 그를 좀 안다는 사람들의 평에 귀를 세우게 된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2004년 6월 이라크 무장단체가 저지른 김선일 씨 피살 사건 때를 회상하며 그를 "책임지지 않는 사람으로 봤다"고 말했다.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김 씨 피랍 단계부터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해 국정감사에서 혼쭐이 나고 국민적 사퇴 압박을 받았으나 용케 비켜나갔다. 2006년 동원호 피랍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해찬 의원 같은 이는 아예 대통령 '깜'이 되지 않는다고 혹평한다. 개인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면 흘려들을 수 없는 지적이다.

반 전 총장의 평전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등을 통해 '인간 반기문'은 온화하면서도 치밀·집요·철두철미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누구나 멘토로 삼을 만한 인격체임이 틀림없다. 10년 세월 동안 '세계평화 대통령'은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개인적, 국가적 업적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외국 언론의 비평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유엔 역사상 최악의 사무총장이 한국에서는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다', '행정 능력이나 통치 능력 모두에서 실패한 총장이다'라는 건 터무니없는 험담인가. 도무지 모를 일이다.

별명에 이어 인물·유엔공적 평가마저 널을 뛰니 국민이 헷갈릴 만도 하다. 지난 10년간 우리와 고초를 함께하지 않은 그다.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아온 터에 강산이 변하듯 어떻게 변했는지도 알 수 없다. '투명인간' '별에서 온 그대'라는 말이 시중에 나도는 건 그만큼 모른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반 전 총장은 자신의 정치 노선과 이념을 '진보적 보수주의'로 규정했다. 모순적 수사다. 선거에서 진영 가릴 것 없이 폭넓은 지지를 얻겠다는 걸 탓할 바는 아니지만 이 또한 미끌미끌하다. 화두로 던진 국민 대통합이 부의 양극화와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끝내는 것이라지만 막연한 정치 구호로 들리는 이유는 뭘까. 오랫동안 국내 현안을 접하지 않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와 그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떠올리기 싫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100% 대한민국'이 어른거린다. 국민 통합은 진정성 있는 실천이 담보돼야 할 문제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100ｍ를 달리는 속도로 밤낮없이 뛰었다"며 유엔 사무총장 10년을 자평했다. 쌓은 경륜으로 국민을 위해 한 몸 불사르겠다는 자신감을 보였으나 당장 질문이 제기된다.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적으로 가장 힘 있는 자리다. 그런 위치에서 대한민국 최고 현안인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해봤느냐는 것이다.

때론 진흙탕에 뛰어들어야 하는 갈등이 심한 정치에 줄타기 외교관 캐릭터가 맞느냐는 의문은 그에게 줄곧 따라 다녔다.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 불쾌해하겠지만 국민은 모르기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패권과 기득권을 청산하는 '정치 교체'로 '정권 교체'에 대립각을 세웠다. 정치 문외한인 그에게 과연 기대를 걸어도 될 만한 것인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2주차 지지율 조사에서 반 전 총장은 문재인에 뒤진 20% 박스권에 묶여 있다. 개선 장군처럼 귀국하면 확 바뀔 분위기였지만 어째 좀 밋밋하다. 촛불 광장에서 보듯 차기 대선 참여율이 높을 2030세대 지지율은 10% 밑이다. '흐릿한 반기문'이 흡입력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한두 주 정도 지켜봐야겠지만 바람을 일으키는 타이밍을 실기하면 험난해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우리에게 던진 최대 교훈은 지도자에 대한 가혹한 검증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숱한 공격이 반 전 총장에 가해질 것이다. 그의 외교적 업적과 명예를 뭉개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완주할 맷집 또한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애매모호함은 위험하다. 그런 데서 나오는 비전과 정책이 신뢰를 받기란 어렵다. 자신의 노선과 색깔, 됨됨이를 선명히 드러내고 평가받는 게 우선이다. 벚꽃 대선을 가정하면 시간이 촉박하다. '기름장어'가 크게 흔들어 깨우고 뒤집어 나라를 일으키는 '대란대치(大亂大治)'의 적격자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수 없다. 외교와 통치는 전적으로 다른 문제다. 반기문의 적은 반기문 자신이다.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