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도 않았던 상하이를 배경으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그 뒤부터 상하이는 내게 숨겨둔 애인이 있는 곳처럼, 혹은 잃어버린 그 무엇이 있는 곳처럼 내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숙제처럼 마음에 걸려 있던 상하이에 도착하던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여행지의 첫날이 색다른 멋으로 다가왔다.

비 오는 날 공원 안에서 가지각색의 우산을 줄지어 늘어놓고 판매를 하는가. 인민공원 한 편에 다양한 빛깔의 우산이 초등학생처럼 도열해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새 우산도 아니고 펼친 우산 위에는 글자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몇 개 아는 글자를 조합해 보니 자신의 신상을 내걸고 평생을 함께할 짝꿍을 찾는 광고 문구였다. 이른바 중매시장이 선 것이다. 배우자를 찾기 위해 내건 우산이라니. 왜 하필 우산? 언뜻 궂은 날이 많은 우리네 인생사를 함께할 사람을 찾는 일에 우산이 안성맞춤이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상해 도착 첫날 경험한 신기한 풍경에 오랫동안 눈이 갔다.

상해의 놀랄만한 풍경은 인민공원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와이탄에서도 이어졌다. 나는 황푸 강을 끼고 유럽식 건축물들이 줄지어선 와이탄을 거닐며 잠시 내가 선 곳이 어디인지 잊었다. 마치 유럽의 어느 나라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상해 랜드마크이고 자랑거리인 와이탄은 한때 개와 중국인을 출입금지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식민지의 잔재를 고스란히 간직한 상처의 장소이다. 내색 없이 아픈 역사를 부둥켜안고 눈부신 성장을 한 와이탄을 바라보며 황푸 강 위 페리에서 상념에 젖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와이탄이 영국 조계지였다면 인민공원 서쪽으로 펼쳐진 화이하이루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하여 화이하이루 역시 다양한 포즈를 취한 모델들처럼 유럽식 건축물이 멋스럽게 서 있다. 다른 면이 있다면 중국의 옛 건축양식인 석고문과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뒤섞여 있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고급스러운 각종 카페가 즐비해 자본주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이 일대의 신천지에는 공산당의 시작을 알렸던 중공일대회지가 있다. 동서양, 고전과 현대 그리고 자본주의 터전 위에 존재하는 옛 공산당의 성지. 모순되고 이색적인 공간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로 북적였다.

아름다운 카페 거리를 벗어나 발길을 돌리는데 마음부터 무거워졌다. 1919년 4월 13일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신천지를 개발하면서 없어질 뻔한 위기를 넘기고 간신히 남았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짠한데 휘황한 신천지와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되돌아간 듯 풍경이 달라졌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후미지고 낙후된 골목 안에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고군분투했던 이들의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예우는 고사하고 독립운동 자체를 부정하는 행태를 저지르고 있는 나라 안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투사들은 말이 없었다. 임시정부청사에서 느꼈던 참담함은 루쉰 공원의 윤봉길 기념관에서도 이어졌다. 루쉰 공원은 모택동이 존경했다는 중국 문학계의 거장 루쉰을 기리는 공원이기도 하지만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 요인들에게 폭탄을 투하한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원래 이름이 훙커우였는데 루쉰이 즐겨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을 딴 공원으로 변모했다. 루쉰 무덤과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는 루쉰 공원 한 편에 초라하고 찾는 이도 별로 없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다. 정자 형태 2층 목조건물 안에 그의 흉상과 친필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총을 맞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국 직전의 사진은 자갈뭉치를 삼킨 듯한 통증을 느끼게 했다.

휘황한 신천지에 남루하게 자리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존경해 받들었던 루쉰 공원 안의 초라한 윤봉길 의사 기념관. 이런저런 생각으로 내 마음은 심란해져만 가는데 공원 안에 자리를 편 타국의 남정네는 연신 색소폰을 불어대고 그 앞의 여인네들은 흐느적흐느적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아픈 역사를 끌어안고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는 그들은 해파리처럼 여유로운 춤을 추고 있는데 숙제를 하러 온 상해에서 나는 또 하나의 숙제를 받은 느낌이었다. 이야기를 짓는 일을 하는 내게 상하이는 그렇게 조곤조곤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