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래서 새해, 새날, 새싹이라는 말에는 희망이 담겨 있다. 며칠 있으면 음력 원단이다. 지난날의 아이들, 새날의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희망을 그들 품에 안겨줘야 한다. 이번 새날에는 어린아이를 보호하고 수호했던 귀자모(鬼子母)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석가 생존에 남의 어린아이를 마구 잡아먹는 식인귀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여자 귀신 귀자모이다. 그녀는 자신이 키우는 많은 아이는 소중히 여기는 반면, 인간의 어린 영아들은 거침없이 잡아먹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세월을 보내다가 기사굴산에 거주하는 석가를 찾아가 그 비통한 심정을 하소연하였다. 그러자 석가는 지혜를 발휘하여 귀자모의 아이들 중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자식 한 명을 숨겨버렸다. 이윽고 남의 아이들을 잡으러 갔다가 돌아온 귀자모는 가장 아끼는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미친 듯이 찾아 헤맸다. 그러나 아이는 결코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가슴이 터질 듯한 심정으로 석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다. 드디어 석가는 귀자모로 하여금 자식을 잃어버린 고통을 통해 그동안 그녀가 잡아먹은 그 아이들의 부모들의 비통한 심정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었다. 귀자모는 자식을 되돌려 받으면서, 앞으로 인간의 어린아이들을 절대 잡아먹지 않고 보호해주겠다고 서원을 하였다.
이후 그녀는 불교에 귀의하여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대신 어린 생명체를 보호하고 수호해주는 어미 귀신인 귀자모신(鬼子母神)이 되었다. 귀자모는 불교의 법화경 다라니품에 등장하게 되는 여신 중의 한 명이 되었다. 밀교적 성격을 지닌 다라니품의 귀자모 신앙은 주술적인 기도와 관련을 지닌다. 중국에서 산모가 순조롭게 아이를 낳는 안산신앙의 주체이자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수호여신으로 확산 보급되었다.
귀자모신은 일설에 가리제모(訶梨帝母)라고도 한다. 원래 인도의 귀신 하리티(Hariti)에서 유래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영아를 잡아먹는 여자 식인귀였으나, 석가의 가르침으로 불교의 수호여신이 되었고, 불교가 전파됨에 따라 귀자모 신앙도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으로 널리 퍼져 나갔던 것으로 본다.
이 같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동아시아 지역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신 조각이나 그림들도 제작되었다. 귀자모 혹은 가리제모의 모습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풍요를 상징하는 길상과실인 석류를 손에 들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귀자모 신앙은 관세음신앙과 연결하여 안산과 수호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불임여성에게는 아이를 갖게 해주는 기원의 대상이며, 아이를 순산하며 아이를 보호하는 여신으로 여성 신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귀자모 외에도 어린아이를 보호해주는 종규도 빼놓을 수 없다. 종규는 중국 민간 신화에 나오는 남자 귀신의 일종으로, 얼굴이 험상궂게 생기고 근육질의 모습을 지닌 인물이다. 종규의 기원과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몽계필담(夢溪筆談)'에 의하면 '당나라 현종이 여산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환궁한 직후 한 달을 넘게 앓던 그가 병석에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작은 귀신이 나타나 현종이 소중히 여기는 양귀비의 향낭을 훔치기도 하고 현종의 옥피리를 불며 법석을 떨었다. 이에 현종이 큰소리로 신하를 부르자 큰 귀신(大鬼)이 갑자기 나타나 작은 귀신을 쫓아가 잡아서 두 눈을 빼내고 산채로 삼켜 먹어 버렸다. 현종이 놀라 누구냐고 묻자 무과에 급제하지 못하고 자살한 종규라고 답하며, 폐하를 위해 천하의 사악한 모든 것을 없애 드리겠다고 맹세하였다'고 한다. 이에 현종은 꿈에서 본 종규의 모습을 당대의 가장 유명한 화가 오도자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다고 전하며, 이후 종규는 악귀나 요괴를 잡는 신년 벽사신으로 신앙을 모으게 되었다. 단옷날에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민간에서 즐겨 그리기도 하였으며, 특히 어린이들에게 종규 모양의 주머니를 만들어 허리에 차면 온갖 질병으로부터 지켜준다고 믿었다.
지난해 이세돌과 알파고 대결 이후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의 어린아이의 65% 이상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군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아이는 미래의 희망이다. 새해가 되면 아이들에게 설빔을 입히고, 세뱃돈을 준다. 따지고 보면 새해 첫날은 아이들을 축복하는 날이다. 세뱃돈과 설빔을 입히는 이유가 아이들이 희망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동아대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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