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국부론을 완역하신 재정학자셨던 선친의 영향을 받아 애덤 스미스의 시각으로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현대 경제발전의 이정에 있어 항상 대비되어 오는 두 이론이 있다. 바로 성장론과 분배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 경제에 성장론과 분배론은 모두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성장론에 입각한 경제정책은 가진 자의 주머니만 불리는 데 그쳐 중산층마저 무너뜨리며, 오히려 경제의 큰 기반인 내수를 악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반면 분배 확대정책은 부를 효과적으로 재분배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소득세 부문에서 보면 상위 10% 소득자들이 전체 소득세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최고 세율이 38%인 점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의 부자 증세는 한계가 있다. 10%는 소출을 더 얻기에는 밭이 너무 작다. 밭을 늘려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근로소득자는 1733만 명이고, 이 중 억대 소득자는 약 59만 명으로 3.4%를 차지한다. 실질적인 비정규직 근로자는 50% 선이고, 소득근로자의 약 46%가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소득세 징수 규모는 약 63조 원으로, 전체 국세 징수액에 대한 기여도가 27% 정도다. 현 상황에서는 가계도 기업도 정부도 서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미 20년이 넘도록 억대연봉은 마치 꿈의 연봉으로 치부했다. 과연 억대연봉은 고소득자를 대변하는가? 집값 10억 원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얘기하는 지금, 40대 초반의 4인 가구 기준으로 본다면 이제 억대 소득은 결코 고액소득이라 할 수 없다. 중산층을 두껍게 만들어 밭을 늘리려면 이제 중산층과 그 소득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도 중산층 확대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대표적으로 2014년 새롭게 시행된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들 수 있다. 기업의 잉여소득을 가계와 사회로 환류시켜 내수침체 극복과 경기 활성화를 끌어내기 위한 목적이다. 기업들의 잉여소득을 투자, 배당 그리고 임금 증가액에 사용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구조인데, 임금 증가액의 경우 그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먼저 1억2000만 원 이상의 연봉자에게 지급하는 임금 인상분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을 받지 못 하게 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더 많은 직원에게 억대 이상의 연봉을 지급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또 기업들은 임금을 올리기는 쉬워도 내리기는 어려운 특성(임금의 하방경직성) 탓에 세금을 줄이기 위해 쉽게 임금을 올리지도 못한다. 결국 기업소득이 가계소득으로 이전되기 어렵다.

'이솝우화'의 태양과 바람의 내기를 빗대어 보면, 행인의 외투를 벗기는 데에는 강한 바람보다는 따뜻한 햇볕이 더욱 효과적일지 모른다.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고, 부자(기업)에게 따뜻한 햇볕을 쬐어 스스로 부의 외투를 벗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우선 기업이 생산 확대와 수출 증대를 통해 국부를 더욱 키울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그 과실에 대해 초과이익분배금 등 종업원 소득증대를 통해 부의 재분배에 적극적인 기업에 대해 더 강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어떨까?

만약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의 3분의 1 수준인 590만 명 이상이 억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 현재 소득세율로 따져도 근로소득세 징수 규모는 약 200조 원이 된다. 이는 올해 정부예산의 50% 수준으로, 정부로서는 부의 재분배를 위한 실탄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룰 하나를 바꾸어 기적을 일으킨 역사적 사건 두 가지를 혁신 전문가인 강신장 한양대 특임교수의 칼럼을 빌려 인용해 본다.

1955~56시즌 미국 NBA 농구팀들은 '공격 제한시간'이 없던 시절이라, 지루하고 재미없는 경기운영을 했다. 4쿼터 종료 점수가 25 대 24라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관객들의 외면을 받아 파산 위기를 맞는다. 그러자 논의 끝에 한 가지 룰을 도입한다, 결과는 단숨에 미국 프로스포츠 랭킹 1위에 올랐고, 선수들의 연봉은 천문학적으로 올랐다. 바로 공격제한시간 24초 룰이다. 이 24초 안에 슛을 넣기 위해 감독과 선수들은 창의성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했다.

1788년 대영제국은 골치 아픈 문제에 봉착한다. 미국이 독립한 후 죄수들을 호주로 보냈는데, 한 배에 죄수들을 500명씩 태워 보내면 가는 도중에 150명 내외가 사망했다. 그러나 선장에게 주는 운임의 지급방식을 승선인원 기준에서 하선인원 기준으로 바꾼 후, 422명을 태워 보냈을 때 사망자가 1명에 그쳤다. 선장과 선원들이 죄수들을 정성껏 관리했다.

우리나라 부자 열 명 중 여섯 명은 상속 부자다. 선진국 평균은 열에 셋 정도다. 우리도 자수성가형 부자가 열 명 중 일곱 명이 나올 수 있도록 무엇인가 하나 바꿔볼 수 없을까? '하나의 룰'이라는 화두를 던져본다.

한국해양보증보험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