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유례없는 경기 불황 여파로 지역 경기가 썰렁하기 그지없는 탓이다. 국내 '조선 메카' 경남 거제는 더욱 그렇다. 타 지역의 경제적 한파와는 온도 차이가 다르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근로자가 현장을 떠났고 지역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소비 심리 위축으로 근로자들은 지갑을 아예 닫아버렸다. 거제로 출퇴근하는 근로자가 많은 인근 도시 통영도 마찬가지다.

일을 하고도 월급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도 속출하고 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이 조사한 관내(거제 통영 고성) 체불임금은 지난해 581억 원으로 역대 최대다. 1만3114명이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했다. 체불임금은 2014년 151억 원에 그쳤지만 2015년 218억 원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큰 폭으로 급증했다. 조선협력업체가 밀집한 거제 근로자들이 대부분 임금을 받지 못했다.

지역주민은 아우성이다. 한때 '불 꺼지지 않는 항구'로 영원한 번영을 누릴 것 같았던 거제였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상황은 급반전됐다. 조선소 인근 원룸촌은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으나, 지금은 공방이 넘친다. 임대료가 하늘 모르게 치솟던 시내 가게는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거제는 국내 도시 가운데 가장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가 바뀌었지만 사정은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조기 대선이 유력해지면서 거제를 찾는 대선 주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최악의 경제난에 빠진 도시를 찾아 민심을 추스르고 경제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며, 경제 살리기에 적임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거제만한 곳이 없다는 이유다. 국내 빅3 조선소 가운데 빅2가 거제에 있고, 이 중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대표적인 조선소 노조라는 점에서 노동계의 주목을 끌 수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다녀갔고, 거제가 고향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2015년에 이어 또다시 찾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선 주자들도 거제 방문을 조율 중이다.

지역주민의 반응은 냉담하다.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지난해부터 각 정당 대표와 정부 부처 관계자가 수없이 대우조선해양을 들락날락했지만 나아진 것은 없고, 일방적인 사람 자르기식의 구조조정이 계속돼 왔다는 점에서 정부와 각 정당을 믿지 못하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그래서 대선 주자들의 방문에도 시큰둥하다. 와서 사진만 찍고는 얼굴 내밀기에 급급한 형식적인 방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노조와의 간담회 내용도 대부분 "노사가 합심해서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자"는 원론적인 이야기 일색이다.

거제의 지금 상황은 조선업 호황이 꺾이기 시작한 2012년께부터 서서히 진행됐으며, 2015년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현실로 다가왔고 2016년 한 해 동안 참담한 시절을 보냈다. 수년째 이 같은 현상이 계속돼 왔는데도 그동안 대안 제시는커녕 멍하니 바라만 보고 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선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라고 업계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선업도 사이클이 있는데 곧 회복세로 접어들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대선주자들은 거제를 찾을 때 조선업과 지역경제를 살릴 해법을 마땅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평생을 조선업에 일해 왔지만 어깨가 축 처질 대로 처진 근로자들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이다.

사회2부 부장 phc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