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유학 온 여학생이 부산 서면에서 양정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택시에 오르자마자 택시기사는 독도와 관련된 뉴스를 들으며 험악한 얼굴로 일본에 대한 욕설을 해댔다.

일본 아가씨는 문득 겁이 나서 양정역에 가자고 할 수 없었다. '양정'이라는 발음이 어려워 일본인이라는 것이 들통날 것 같아서였다. 자신이 일본사람이란 걸 알면 그 택시기사에게 어떤 험한 욕을 먹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역인 연산역, 동래역으로 하려니 모두 일본인으로서는 발음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 이 아가씨는 하는 수 없이 비교적 발음이 쉬운 부산대까지 가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어떤 할머니의 텃밭 경고 팻말이 페이스북에 올려졌다.

-도둥년 나뿐연 / 상추뽑아간연 / 처먹고디저라-

물론 그 말이 재미있어서 올렸겠지만, 이웃에 살면서 상추 좀 뽑아갔다고 그렇게 심한 욕까지는 너무 했지 않았는가. 그런데 거기에 올라오는 댓글이 문제다. 대부분이 상추를 뽑아간 도둥년(?)을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 현주소라 생각하니 조금은 씁쓸했다. 옛날에는 남의 것을 슬쩍하는 '서리'라는 것이 있어서 웬만한 것은 나눠 먹는다는 생각으로 눈감아줬다. 물질적으로 조금 손해를 본다는 것보다 이웃과의 정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한다. 인간이 어울려 살다 보면 서로에게 다소 피해를 끼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남에게 손해주지 않고, 자기 것 손해 하나도 보지 않으려 하는 사회는 그만큼 삭막하다는 증거다. 지금 우리는 남의 잘못이나 실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금방이라도 예리한 칼날을 들이민다. 아차 잘못 밟으면 터지는 인간지뢰가 도처에 널려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두가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도서관 일층 카페에서 갑자기 걸려온 휴대전화를 받고는 곧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신사가 살기 서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얼른 미안하다고 했지만 불과 몇 초를 참지 못하고 남에게 죽일 듯이 칼날을 들이미는 것이 못마땅했다. 아니 신사 정도면 그 품위에 맞게 조금은 정중하게 경고를 보낼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날 귀갓길 도시철도에서 또 한 번의 살기 서린 목소리를 접하고 말았다. 평화롭던 도시철도 안에서 갑자기 험악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한 노인이 수다를 떨던 할머니들에게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쌍욕을 퍼붓고는 내려버린 것이다. 할머니들의 수다가 아무리 심했다 하더라도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어마어마한 욕설을 퍼붓고 나가버리니 그 할머니들도 할머니들이지만 옆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모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마른하늘에 난데없이 떨어지는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아이, 담배 냄새!

칼날 같은 소프라노의 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창 닫는 소리가 섬뜩하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냄새에 그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바로 그 아래, 수시로 지나가는 자동차는 소음도 소음이지만 배기가스는 1초에 담배 2만 개비를 동시에 피우는 것과 맞먹는 공해를 배출한다고 한다. 그것에는 무신경하면서 이웃에 살면서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그렇게 어퍼컷을 날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요즈음에 와서는 담배도 담배지만 층간 소음 때문에 크고 작은 다툼은 물론이요 심하면 살인까지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창원의 현직 판사라는 사람이 소음문제로 위층 주민의 차를 못으로 긁는 일까지 발생했으니 우리의 자화상치고는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나빠져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오로지 경제적 수치로만 선진국이니 뭐니 하며 자만에 빠져 있다. 세계가 한류로 열광하니 우리나라가 마치 우수한 문화국민인 것처럼 폼 잡을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 우리를 하찮게 보고 손가락질하는 것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나빠져 있는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는 위증이나, 남을 거짓으로 고소 ·고발하는 무고 사건 숫자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수백 배가 넘는 수치이다. 2007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일본은 위증죄로 138명이 입건됐으나 우리는 3533명이 입건됐다. 무고죄도 일본은 133명인데 비해 우리는 4580명이나 된다. 이것이 우리 민낯이다. 우리는 임기응변식 대처와 생존능력은 뛰어나지만 남에 대한 배려나 양보가 부족하다. 부족해도 많이 부족하다.



"한국사람 나빠요!"

한때 유행했던 말이지만 외국인을 고용한 어느 나쁜 한국인 사장님의 경우가 아니라 그것이 점차 우리 모두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건들면 폭발하는 인간지뢰와 같은 나쁜 한국인이 늘어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