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장시간 대기·치료비 더 늘어
- 1~3차 기관 순차진료 대국민 홍보
- 건보 수가체제 개편 최선 다해야

우리나라에서는 의원급과 중소병원급, 상급병원(대형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이 외래 진료 환자 확보에 과도한 경쟁을 하고 있다. 동네의원과 중소병원들은 인구 감소와 경제불황으로 환자 수가 많이 줄어들어 경영이 어려운 데다 대형 종합병원과 대학병원들이 외래 환자 유치까지 나서니 더욱더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동네의원은 가벼운 질환을 주로 진료하고, 조금 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거나 조금 더 중한 환자는 중소병원으로 가면 된다. 대학병원은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희소 난치 질환자와 중소병원에서도 진료가 힘든 중증 환자를 보는 것이 제대로 정립된 의료전달체계이다.

2015년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전염병이 짧은 기간 내에 대규모로 퍼진 것은 1차적으로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와 메르스 환자에 대한 늦은 정보 공개가 주원인이었다. 하지만 전염병 환자들도 손쉽게 바로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는 잘못된 의료체계와 국민의 대형병원 선호 원인에 맞물려 대학병원 응급실과 외래에 너무 많은 환자가 몰린 탓도 있다. 비현실적으로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 인한 대형병원들의 후진적인 응급실 체계가 한몫한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의료전달체계가 의료계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원가 이하의 낮은 건강보험 수가로 인해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자 상급병원도 어떻게든 외래 환자 수를 늘리려고 한다. 명의(名醫)를 지나치게 좋아하고 고가 의료장비가 있는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국민의 잘못된 인식을 파고든 것이다. 그와 함께 가벼운 질환의 환자가 의원에서 대학병원으로 바로 가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진료의뢰서 발급 제도의 유명무실함도 한 원인이 된다.

가벼운 질환에 대한 치료는 동네의원이나 대학병원이나 거의 같다. 그런데도 국민은 가벼운 질환도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더 나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어 오랜 시간을 대기하며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 중하지 않은 질환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방문한다면 중환자 우선 치료의 응급실 수칙에 의해 제대로 즉각적인 진료를 받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국민도 무슨 질환이 있건 바로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으려고 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평소에 환자들은 동네의원을 단골로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만약 위중한 질환에 걸린 것이 아니면 우선 동네 의원에서 진찰을 받는 것이 여러 면에서 환자에게 좋다. 조금 더 전문적인 검사가 필요하거나 중증 질병일 경우에는 동네 단골 의사와 상의하여 가까운 2차 중소병원을 거쳐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된다.

현재처럼 의원과 대형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이 외래에서 가벼운 질환 환자를 더 많이 진료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것은 환자들에게도 이롭지 않다. 대형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은 가벼운 질환 환자가 외래에 진료받으러 오면 다음부터는 개인의원이나 중소병원에서 진료받으라고 권유해야 한다. 대형 종합병원은 희소 난치 환자와 중증환자의 진료에 집중하면서, 의과대학생들의 교육과 연구 개발에 힘을 써야 한다. 현재 동네의원들은 외래 진료만을 주로 하고 있으므로 상급병원은 외래 진료를 줄이고 입원 진료에 치중해야 한다.

이렇게 1차, 2차, 3차 의료기관 간의 역할 정립이 올바르게 돼야 한다. 그래야 모든 의료기관이 상생하고 환자들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대학병원이 중증 질환자 입원 진료를 늘리고 외래 진료를 줄이는 데 따른 좀 더 높은 입원 진료 수가를 인정해줘야 한다. 반면에 가벼운 환자를 너무 많이 진료하거나 입원에 비해 외래 진료 비율이 높으면 강력한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와 함께 질병의 정도에 따라 적합한 규모의 병·의원에서 진료받도록 국민에게 적극 홍보하고 국회에서의 법령 개정과 건강보험 보상체계의 개편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 부산시의사회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