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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비판을 위한 비판은 하지 말아야 할까

통치자의 오만에 대한 비판은 권력 절대화 막는 예방약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속 아이처럼 잘못된 것엔 지적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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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2-16 19:43:4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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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모멘텀으로 삼을 때 가치가 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정 농단과 대통령 탄핵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럴 때일수록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우리가 그간 '개념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도 일상에서 '개념 없다'라는 말을 곧잘 쓰는 걸 보니, '개념 있기' 위한 성찰의 필요는 당연한 것 같다.
   
사회와 국가, 즉 공동체 생활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개념 중 하나가 비판이다. 비판이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다. 인간은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간다. 잘못은 비판의 대상이다. 비판이라는 말에는 그것이 어느 나라 언어이든지 '잘못을 집어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비판은 공동체 안에서 인간이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생활 방식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생존 방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잘못하고 수정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매우 경계한다. 비판은 공동체 생활에 필요하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배척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지 말라!" 이것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계명'의 수준이다.

그렇다면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것'은 또 무엇인지 헷갈린다. 사람들은 '건설적 비판'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또는 '대안을 제시하는 비판'이라는 말도 언론 매체나 지식인들의 토론에서 많이 접하는 표현이다. 이제 뭔가 좀 감이 잡히는 것 같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그저 남의 잘못을 집어내 깎아내리기 위해서 하는 비판이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점에서 비판의 본질적 의미를 되돌아봐야 한다. 비판의 본질이 잘못을 지적하는 데 있다면 반드시 대안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국가정책과 공공사업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도 비판의 중요한 역할이다. 공적인 일들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전문가라면 몰라도 일반 시민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서 시민이 공공 정책이나 사업의 잘못된 점을 집어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문가에게도 마찬가지다. 바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올더스 헉슬리는 "패러디와 캐리커처야말로 가장 침투력이 강한 비판이다"라고 했다. 패러디, 캐리커처, 만평, 풍자, 해학 등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비판을 위한 비판'의 전형이다. 비판 그 자체의 기능을 부각하며 잘못을 기막히게 꼬집어 소통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시야를 넓혀보자.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작품은 작가가 적극적으로 의도하든 안 하든 삶을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예술인들이 특정한 비판 대상을 설정하지 않고 작품을 하더라도 그 작품 자체가 우리 삶을 비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곧 삶을 반성하게 하고 삶에 대해 깊고 넓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대안을 제시하지 않지만, 무의미하거나 아무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비판은 비판받는 대상을 담금질하는 기능 또한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정책이든, 작품이든, 잘못을 지적하는 다양한 비판을 견뎌내야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런 담금질을 잘 견뎌내서 더욱 빛날 수 있다.

비판은 비판의 대상을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역할을 한다. 서양어에서 위기(crisis)라는 말은 원래 의학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병환이 고비에 이른 것을 뜻한다. 절정에 이른다는 것은 바로 전환점에 이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해 죽음에 이르거나 그 고비를 넘겨 바로 그것이 회복의 기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것은 이런 위기의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성해서 고비를 넘기는지 시험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비판은 전략적이기도 하다. 그것을 극복하면 분명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위기라는 말과 비판을 뜻하는 단어(criticism) 사이의 유사점을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은 원래 같은 어원에서 유래하는데, "절정의 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라는 의미와 밀접하다. 병세도 위기의 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든가 아니면 결정적으로 회복세로 돌아서든가 하며, 비판을 받는 사람도 자신을 향한 여러 비판이 최고조에 이를 때에 무너지든가 아니면 그것들을 극복하고 확고히 나아갈 수 있다.

비판의 기능 자체에 주목하면 비판을 위한 비판은 분명 전략적 가치가 있다. 이는 특히 정치권력의 차원에서 중요하다. 비판은 권력이 절대화하는 것을 막는 예방약이다. 즉 어떤 사실의 절대적 주장 또는 정책의 완벽한 제안과 성과라는 환상을 깨는 역할을 한다. 권력은 종종 시민들이 지성을 행사하는 힘을 약화시켜 미성숙의 상태에 놔두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지만, 시민들의 비판은 통치의 오만과 과잉을 감시하고 그것을 교정하려 한다. 미셸 푸코의 말을 빌리면 정치적 차원에서 비판의 일차적 정의는 "이런 식으로 통치받지 않으려는 기술"이다. 그것은 통치에 대한 절대적 저항이 아니라 통치의 과잉과 오류에 대해 "숙고하는 비순종의 기술"이다.

지금까지 나라의 공인들이 곧잘 꺼내 들었던 비판을 위한 비판에 대한 경계의 방패, 그것은 충분히 의심의 대상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아이들이 쓰는 표현대로 미성숙하고 '개념 없는 인간'이 권력에 더 편해서 하는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황제 폐하의 새 옷'이라는 동화, 다 아는 이야기다. 겁 없고 불경스러운 아이는 어른들이 권력 앞에서 너무도 쉽게 순종적이 되는 와중에도 권력자를 향해 진실을 말한다. "황제 폐하는 벌거숭이"라고. 어른들이 권력의 기만을 지적할, 곧 비판할 엄두도 못 내고 있을 때, 아이는 권력을 벌거벗긴다. 아이는 잘못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즉 자기도 모르게 비판적 태도를 가진 것이다. 이 비판적 태도는 그가 순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잘못을 보는 그대로 지적하는 이런 순진무구함과 밀접하다. 이 점은 중요하다. 본질적 의미에서 비판을 위한 비판은 꼼수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철학자·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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