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성인 데보라 스미스는 요즘 큰 주목을 받는 번역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우리나라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옮겨 저자인 한강 씨와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공동수상했다. 이어 '고발'이라는 책으로 영국 내 작가단체인 '영국펜(English PEN)'이 수여하는 2016년 하반기 번역상도 받았다. 이 소설의 저자는 북한의 '반디(필명)'다. 데보라 스미스는 남·북한 작가의 소설을 모두 번역해 굵직한 상을 받는 이색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한 씨가 맨부커상 수상자가 됐을 때 문단에서는 번역의 힘이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어권 독자가 비영어로 쓰여진 소설을 쉽게 접하려면 유려한 번역이 필수였던 까닭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솜씨 좋은 번역가를 크게 우대한다. 1968년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미국의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를 극찬하며 상금의 절반을 나눠준 것이 좋은 사례다.

'좋은 번역이 어떤 것인가'는 해묵은 논쟁 가운데 하나다. 어떤 이들은 되도록 원문을 거의 그대로 옮기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행간의 뜻을 정확히 파악한 뒤 타국 독자들을 사로잡도록 하는 게 훌륭한 번역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들은 대개 프랑스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큰 열풍을 몰고 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간과 기계 간 번역대결이 벌어졌다. 전문 번역가 4명과 인공지능(AI) 번역기 3종이 자웅을 겨뤘다. 대결 방법은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식이었다. 결론은 인간의 완승. 인간이 30점 만점의 두 분야에서 평균 24점, 25점을 받은 반면 AI는 9.3점, 10.6점에 그쳤다. AI는 번역 속도가 월등하게 빨랐고 정형화된 문장은 100% 해석을 했다. 그렇지만 미묘한 감정이 담긴 문장에 대해서는 단순히 단어만 나열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결과를 보니 인간이 바둑에서 AI에게 당했던 수모를 통쾌하게 되갚았다는 말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또 기계가 쉽게 넘보지 못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까지 나온다. 정보기술( IT) 전문가들도 감정이 개입되는 문학 등의 영역에서는 기계가 상당기간 인간에 필적하기 힘들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 장벽도 언젠가는 깨질 것이라는 관측도 우세하다. 이런 전망이 맞다면 미래에는 인간이 설자리가 아예 없어질지도 모를 일. 그럼 우리 후손들은 뭘 하고 살는지.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