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기업의 생사를 결정한다. 기술 혁신의 큰 물결을 어떻게 타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달라진다. 신기술은 새로운 비즈니스와 산업을 창출한다.

증기엔진이 발명되면서 철도산업과 해상운송산업이 발전하였고 내연기관이 개발되어 자동차산업이 생겨났다. 전자기 원리와 함께 발전기, 전화기, 무선전화가 개발되어 전력산업, 통신산업이 등장했다. 1950년대 군용으로 사용되던 제트엔진을 항공기에도 적용해 대륙 간 항공 여객산업이 가능해져 팬암, TWA 같은 국제항공사가 나타났다. 1960년대 사무용기기업체였던 IBM의 토마스 왓슨은 과학기술계산용으로만 사용되던 컴퓨터가 회계, 급여계산 등의 경영관리 업무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업무용 컴퓨터산업을 창시하고 컴퓨터기술의 혁신을 주도했다. 코닥은 간편한 사진 필름을 개발하여 사진산업을 이끌었다. RCA는 브라운관 TV 산업을 개척하였다. 모토롤라는 디지털무선통신기술을 상용화하여 휴대전화 시장을 개척하여 노키아와 함께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주름잡았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곧 후발 주자들이 등장하여 맹렬히 추격하였다. 치열한 기술혁신 경쟁으로 RCA는 소니 등의 일본기업들에 압도되어 시장에서 퇴출당하였다. IBM은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사실상 거의 독식하였으나 1990년대 개방형 운영체계인 UNIX와 이에 기반한 미니컴퓨터가 다수 등장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IBM은 퍼스널 컴퓨터를 처음 개발해놓고도 메인프레임 컴퓨터에 안주하던 경영진과 기술자들은 퍼스널 컴퓨터의 운영체계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여 빌 게이츠에게 맡겨 마이크로소프트에 세계 SW 시장을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코닥은 후지필름이나 아그파 등의 맹렬한 추격을 받았으나 정작 코닥을 망하게 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코닥은 반도체소자 기술이 발전하여 필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디지털카메라를 먼저 개발해놓고도 이를 사업화하는 데 주춤하는 사이에 캐논 니콘 등 일본의 필름카메라업체들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가져가 버렸다.

소니도 트리니트론이라는 독보적인 브라운관 기술을 개발하여 세계 TV 시장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더구나 워크맨이라는 휴대용 CD를 개발하여 세계시장을 석권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LCD(액정디스플레이) 기술과 디지털화상처리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데도 아날로그 방식의 브라운관 TV에 집착하다가 LCD화면과 디지털화상처리기술에 사활을 건 삼성, LG에 TV 시장을 넘겨주고 말았다.

혁신적인 그래픽인터페이스와 마우스를 이용한 운영체제를 갖춘 매킨토시컴퓨터로 퍼스널컴퓨터 시장을 풍미하던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슷한 운영체제인 윈도를 탑재한 퍼스널컴퓨터에게 밀려 시장에서 퇴출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쫓겨났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난파선의 선장으로 복귀하여 휴대전화에 컴퓨터를 접목한 아이폰을 출시하여 휴대전화 시장을 스마트폰 시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애플과 이를 따라간 삼성 등에 의해 변신에 늦었던 모토롤라와 노키아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갈랐는가? 시장의 패러다임과 게임의 규칙을 바꿀 혁신적인 신기술에 대해 기술자들과 경영진들의 대응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기술자들은 자신이 개발하고 잘 아는 기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새롭게 등장한 신기술을 무시하거나 저항하고 대응이 늦다. 이들은 이미 과거 기술로 기득권을 확보하고 기업 내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맡은 경영진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기술을 주장하는 기술자들을 따라잡을 수도 없고 신개념의 기술을 쉽게 학습하지도 못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을 할 능력도 없다. 기업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최고 경영진이 기술에 대해 학습하고 이해하여 기술자, 기술 임원들을 적절히 활용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기술 중심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로 이공계 출신이 많은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자들의 끝없는 자기혁신이다. 지속적인 학습, 커뮤니케이션, 팀워크로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하는 기술보다 미래 기술과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회사를 위해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 오늘날 이공계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큰 숙제를 던져준다.

카이스트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