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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재심과 법조수장들의 사과 /조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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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2-28 20:07:3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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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작 중에 '재심'이라는 영화가 있다. 2000년 전북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벌어진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당시 목격자였던 15살 소년이 살인범으로 몰렸다가 10년간의 옥살이를 하고는 재심을 통하여 무죄를 선고받았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도 아니고 상업성이 뛰어난 영화도 아닌데 관객들이 몰렸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지금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재심을 통해 소년의 무죄가 밝혀졌지만 경찰 검찰 법원의 수장 어느 누구도 사과한 사실은 없다. 단지 법원처장이 국회에 나와서 형사사법체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깊은 반성을 했다며 구성원의 잘못이 아닌 형사사법체계의 문제로 돌려서 말한 게 전부다. 이만한 일에 조직의 수장이 사과해야 하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얼마 전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검사장 부장검사 부장판사가 구속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김수남 검찰총장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있다. 앞의 사실과 이것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개인의 일탈에 대하여 조직의 수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을 향해 사과한 일은 사과를 하지 않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하지만 검찰이나 법원 등 구성원이 많은 조직에서 구조적인 잘못이 아닌 개인의 일탈은 당사자가 적절한 책임을 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그 조직의 본질적인 업무와 관련되어 잘못이 저질러졌고 그러한 잘못이 드러났을 때는 조직의 수장으로서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게 맞다. 또한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앞으로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나 법원의 재판은 그 조직의 존재근거가 되는 본질적인 업무이다. 이러한 일들이 잘못 진행되었고 나중에 그 잘못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면 조직의 수장이 나서야 한다. 그 조직의 공식적인 견해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앞으로의 재발 방지를 위하여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수사나 재판이 잘못되어 무고한 사람이 그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을 교도소에서 억울하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관여했던 조직은 아무런 말이 없다면 이건 문제다.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는 27%에 불과하여 OECD 국가 42개국 중에 39위일 정도로 매우 낮다. 경찰에 대해서도 국민의 59%만이 신뢰한다고 답하여 OECD 조사대상 34개국 중 멕시코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이다. 이에 대해 자신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여서 그렇다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회피하기만 하는데 어떻게 신뢰가 쌓일 수 있겠는가.
경찰은 최근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던 사건에서 당시 영전했던 수사담당자에게 전혀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약촌오거리 사건에서는 잘못된 수사를 밝히려고 했던 경찰관을 도중에 지구대로 발령 낸 사실이 있다. 또 검찰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무죄 구형을 한 검사를 징계까지 하려고 했지만, 법원은 재심에서 무죄가 난 모든 사건에서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이는 우리 조직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소위 '조직의 무흠결주의'에서 나오는 발상이다. 그러나 재심사건에서 보듯이 어떻게 잘못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문제는 잘못을 저지르는 데 있는 것보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다.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데 책임자를 문책하거나 재발 방지 대책이 있겠는가. 그러면 같은 잘못을 또 반복할 것은 너무나 뻔하다.

얼마 전 대법원은 상고사건이 너무 많아 이를 별도로 심리할 상고법원을 설치하고 지금의 대법원은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입법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에 어떻게 정책을 결정하는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대법원이 결정한 정책이 잘못되었을 경우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그에 대한 사과도 없을 것이고,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을 것인데 대법원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신뢰가 있다면 대법원이 무엇을 한다고 하여도 국민이 나서서 적극 지지해 줄 것이다. 공산품의 하자를 인정하는 리콜이 오히려 그 회사의 신뢰를 쌓듯이 조직의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 방지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그 조직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이는 비단 경찰, 검찰, 법원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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