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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필요 없는 세상이라야

시장만능·승자독식의 격차 사회, 계층이동은 거의 불가능

교육이라는 출세 사다리도 속임수일 뿐…복지국가가 해법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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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3-02 19:05:1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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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4년 울산에서 태어났고 만 53세다. 아버지는 나보다 30살 많고 딸은 30살 적다. 우리 집은 대대로 울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산업화가 본격화된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 울산은 가난한 농촌이었다. 내가 어렸을 땐 동네 사람들 모두가 가난했다. 일례로 나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운동화를 한 번도 신어보지 못했다. 늘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뒤축이 닳으면 슬리퍼처럼 끌고 다녔다. 밥도 주로 보리밥을 먹었다. 5살 위의 사촌이나 동네 형들 대부분은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그래서 4학년 때까지 나의 기대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었다.
   
내 아버지 세대는 상황이 더 나빴다. 내 부모를 포함해 우리 동네의 아버지 세대는 대부분이 초등학교 중퇴 또는 초졸 학력이다. 이 세대의 대다수는 집안이 가난해서 공부할 기회를 잡지 못했거나 농사를 지어 가난한 집안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를 포기했다. 내가 아는 한 우리 동네 인근을 다 포함해도 아버지 세대의 어른 중에서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출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아버지 세대의 울산 시골 출신자 중에서도 명문대를 졸업하고 출세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

나는 요즘 언론에서 거론되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말이 불편하다. 무너진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자는 주장은 잘못된 현실 인식에 근거한 엉터리 해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버지 세대(노년), 나의 세대(장년), 그리고 자식 세대(청년)가 속한 각각의 시대는 계층의 구조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먼저, 아버지 세대의 시대는 구성원 대부분이 하층에 속했다. '천 명 중의 한두 명' 정도가 대학을 나와 출세했을 뿐이었다. 당시 극소수였던 상층은 쳐다보기 어려울 만큼 높은 곳에 위치했고, 이들의 상당수는 원래 상층 출신이었지만 하층 출신으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도 더러 있었다.

다음으로, 내가 포함된 장년 세대의 시대를 살펴보자. 2살 많은 친형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비로소 나는 기대 학력을 중졸로 높일 수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이 되자 발전국가의 경제성장 효과가 우리 동네에도 스며든 것이다. 그 덕분에 5살 위의 동네 형들과 달리 나의 동년배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세대는 1980년대 학번으로 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에는 누구라도 웬만하면 다 취업을 했다. 특히 나의 세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 약 10년간의 경제적 호황을 누리며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롭고 평등한 시대를 살았다.

대규모의 하층과 극소수의 상층 사이에 거대한 격차가 존재했던 아버지 세대 때에 비해 나의 세대 때는 계층의 구조와 성격이 크게 달라졌다. 먼저 상층의 크기가 아버지 세대 때의 '천 명 중의 한두 명'이 아니라 '천 명 중의 일이백 명' 정도로 커졌다. 상층의 규모만 커진 게 아니었다. 상하 계층 간의 격차가 크게 줄었고 대규모의 중산층이 생겨나면서 하층의 규모가 그만큼 감소했다. 이는 1970, 80년대의 경제성장 덕분이었다. 성장시대의 끝자락이던 1995년만 해도 소득 상위 10% 인구는 전체 소득의 32%만을 점유해서 평등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28%에 거의 근접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20년 동안 경제와 산업의 거대한 양극화가 진행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라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착화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 '97년 체제'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는 소득 상위 10% 인구가 전체 소득의 48%를 점유해서 주요 국가 중 미국의 48.2%에 이어 두 번째로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1995년까지의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래서 지금 청년들은 상위 10%의 좋은 일자리를 놓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 자식 세대(청년)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97년 체제'는 계층의 구조와 성격이 1980년대 학번 시대와 크게 달라졌다. 중산층이 무너졌고 상층과 하층 간에는 거대한 격차가 생겨났다. 바로 양극화 시대의 격차 사회다. 외환위기 이전의 1980년대 학번 시대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임금과 복지의 격차가 별로 없었다. 성장시대의 고용안정 덕분에 비정규직이라는 말도 모르고 살았다. 넓은 중산층이 존재했고 기회와 살림살이가 비교적 평등했다. 그런데 자식 세대가 살아가는 '97년 체제'는 계층 간의 거대한 격차 때문에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토머스 홉스의 '자연 상태'에 가깝다.
시장만능과 승자독식의 거대한 격차 사회에서 상층으로 최대한 높이 올라가려는 욕망은 빈부를 가리지 않고 우리 사회의 모든 곳에서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분출된다. 상위 10%의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결국 초·중등 교육부터 입시와 스펙 쌓기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게 된다.

온 국민이 뛰어든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의 사활적 경쟁에서 누가 승자가 될까. 과거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보통사람도 출세할 수 있을까? 대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순환 구조가 막힌 격차 사회에서 계층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명문대 학생들의 대부분은 상층 출신이다.

'97년 체제'의 거대한 격차 사회는 경쟁의 승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자식에게 대물림하려는 지대추구 행위를 만연케 했다. 그래서 계층이동은 더는 해법이 아니다. 어떤 사다리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격차 사회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경제와 산업의 양극화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그대로 둔 채 보통사람들도 교육을 통해 출세할 수 있도록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튼튼하게 만들자는 주장은 그저 속임수일 뿐이다.

   
격차 사회를 해소해서 북유럽 복지국가들처럼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면 된다. 그래서 복지국가가 해법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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