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로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Siren)을 형상화했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했다지만, 스타벅스는 도시인의 발걸음을 유인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스타벅스가 미국 시애틀에서 첫 매장을 낸 1971년엔 이 세이렌은 검정에 가까운 커피색이었다. 1987년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를 인수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로고 색깔을 초록색으로 변경한 것이 한 예다.
하워드 슐츠는 단순히 커피라는 상품이 아니라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이미지를 팔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회색빛 빌딩이 숲을 이룬 삭막한 도시 속 오아시스, 성공한 도시인의 휴식처로 인식된다. 비싼 가격은 아랑곳없이 고객이 줄을 이으니 그가 성공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오아시스는 사막에선 생명 그 자체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초록색 타일과 이슬람 국가들이 국기에 초록색을 사용하는 데서 초록색이 이슬람의 상징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예로부터 혼인할 때 신부가 입었던 초록색 저고리, 붉은 치마, '녹의홍상(綠衣紅裳)'은 생명과 젊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초록색은 고대 로마에선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옷에 염색했더니 쉽게 바랜다는 이유로 노예들조차 갈색을 선호했다. 가장 비천한 자들의 색으로 괄시받던 전통이 괴물 '헐크'의 피부색이나 만화영화 주인공 슈렉의 얼굴색으로 이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초록색이 자연친화적이며 희망의 색으로 거듭난 것은 19세기 중반이 되어서다. 산업화하는 도시에서 휴식과 에너지로서의 초록색 복권이다. 환경 운동과 생태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배경이기도 하다. 초록색은 우리 눈에 편안함을 주며 신장과 간장을 활성화하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올봄 초록색 신드롬이 예사롭지 않다. 세계적인 색채 전문기업 팬톤이 '올해의 컬러'로 선정한 '그리너리(greenery)'가 유통가에서 제대로 먹히고 있다. 그리너리는 노란빛이 도는 초록색으로 싱그러움, 활력, 희망 등 이미지로 통한다. 그 배경이 씁쓸하다.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니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2016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는 색'이란 부연 설명에 탄핵정국과 맞물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 떠올라 하는 말이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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