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 끝났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그런데 나라 안팎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국내적으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선 굵은 흔적을 남길 전대미문의 조기대선 정국에 맞닥뜨린 우리는 싫든 좋든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처지다. 국제적으로는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패권놀음에 혈안이 된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낀 신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그나마 머리가 덜 복잡하겠건만, 우리는 지금 선뜻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느낌이다. 극단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 같아 막막할 따름이다.

혼돈의 불길이 확 치솟고 있다. 집권당이 실종된 상태에서 어느새 차기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후끈 달아올랐지만, 특정 후보군의 열혈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다들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타이틀을 내건 후보 진영마다 쏟아내는 구호와 화두만 좇아가야 할 판이다. 그들은 자기 진영 편을 안 들면 무조건 '나쁜 편'이라는 선명한 글귀가 새겨진 낙인도 준비하고 팍팍 찍어댈 태세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보수의 진정한 가치이고, 어떤 가치가 진보인지 등을 따질 겨를도 없다. 그저 선택만 요구당하고 있다.

나라 주인인 주권자 축제의 장이라는 선거 때마다 국민의 선택의지는 자취를 감추고, 세력 규합이 된 권력의지만 돋보이는 세상이 이번에도 반복되는 양상이다. 선거로 권력을 판 갈이하는 대한민국은 세력 규합에 성공한 일부만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현재 곳곳에서 후보 지지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고 하니 '좋은 나라 사람'이 되기 위한 한탕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모양이다. 한탕주의에 성공한 그들도 다음 번에 판 갈이되면 찬밥신세로 전락하기 일쑤다. 물론 절묘한 줄타기로 좋은 시절만 귀신같이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넘치는 재주를 주체하지 못하다 비참한 꼴을 맛보게 되니 언뜻 세상은 공평하다는 순진한 생각도 해본다. 한편으로는 단맛을 빨아먹다 삐걱거리는 그들의 몰락이 무슨 대수랴 싶다. 더 처참한 몰락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

너도나도 대선 후보로 나서는 이 판국이 꼴사납다. 때가 되면 본선에 나설 경쟁 후보야 정리되겠지만, '선택의 떡 줄 사람들'은 생각도 않는데 그들이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영 못마땅하다. 더 무서운 것은 강요된 선택 후에 싹트는 비극의 씨앗이다. 누군가를 택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지만, 다들 두려운 게다. 치열한 선거전이 끝난 뒤 승자와 패자가 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문화를 강요된 선택은 용납하지 않는 탓이다. 승자 진영은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패자 진영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딴 세상을 꾸려간다. 지난날 우리가 목격한 풍토가 그랬다. 이번에는 서로 따로 노는 세상이 더 굳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신패권놀음이 대선 후보 진영의 입장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덩달아 유권자는 또 하나의 강요된 선택을 해야 할 처지다.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가 이번 대선 이전에 배치가 완료될 조짐을 보이자 이른바 '범여권 진영'은 올바른 결정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범야권 진영'은 후보별 온도 차이가 뚜렷하다. 한 후보는 "차기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힌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또 다른 후보는 "속도전은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사드 알박기 중단' 요구에다 '중국 우선 설득' 등 범야권 후보 진영의 시각차 폭이 워낙 넓어 유권자들은 헷갈린다.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는 미국과 우리나라에 엄청난 보복을 가하는 중국의 틈바구니에 낀 신세를 탈피할 지혜를 찾을 조짐을 보이지 않고 주장만 난무하고 있다.

사드 조기 배치를 환영하는 진영에서는 이번 대선의 가장 강력한 후보 진영을 향해 위험한 안보관과 대북관을 비판하면서 일전을 벌이기로 했다. 야권은 '헌법적 절차 위반'까지 언급하면서 맞대응에 나섰다. 이리 쪼개지고 저리 나눠진 후보 진영 상황이 선택의 고민을 증폭시키는 마당에 냉엄한 국제문제가 얽히고설킨 나라 문제에도 서로 엇박자를 내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중국은 "사드는 잘못된 선택으로 한국을 더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하고, 미국은 "사드는 중국과 상관없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안보 문제다"고 역설하고 있다. 안보와 국익이 맞물린 문제다.

미국은 한반도 사드 배치를 속속 진행하고 있고, 중국은 실전 배치 이후에는 더 큰 보복을 예고했다. 양대 강국의 힘 자랑에 나라는 등 터질 판이다. 해법은커녕 이를 선거 정국의 복잡한 셈법 따지기에 활용하고 선택만 강요하는 대선 후보들은 나라 주인들에게 고민만 안기는 셈이다. 결국 뒷감당은 주권자의 몫인가. 이를 어찌할꼬.

편집국 부국장 겸 뉴미디어본부장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