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사회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인지부조화 이론이 떠올랐다. 현재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 사이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왜곡하는 인간의 공통된 심리과정이다.

인지부조화 사례는 이솝 우화인 '신 포도 이야기'로 많이 설명된다. "포도나무에 매달려 있는 맛있어 보이는 포도를 발견한 배고픈 여우는 포도를 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아무리 높이 뛰어도 손에 닿지 않았다. 곧 여우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포도는 너무 시다. 나는 솔직히 저 포도를 원치 않았어'라고…."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최근에 부쩍 자주 느끼거나 흔히 보는 사회 현상을 대변한다. 그동안 과학기술계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경주 지진, 양산 단층 등과 관련해 국민 모두를 불안하게 한 원전 마피아는 과학 기술 분야 지식 권력들의 인지부조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과학기술계 특유의 폐쇄성과 배타성이 연구 몰입성과 성과 집중을 위해 상당한 장점을 지니면서도 더 큰 그림에서의 정책 결정, 중장기 계획수립, 예산 결정 등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많기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본다.

차기정부 국정과제로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혹자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슈밥 회장의 제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디지털 혁명으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이 구체화되는 시기라고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연결 사회를 지향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동을 걸어야 할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과학기술호도 기존의 틀을 깨고 열린 마음으로 새롭게 과학기술 좌표를 그려야만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10대 선도기술을 살펴보면 3D 프린팅, 첨단 로봇 공학, 사물 인터넷 등 스마트 머신이 실현되어 많은 실업자가 양산되는 등 다양한 사회 변화가 예상된다. 기존의 기계화, 자동화, 로봇화가 블루칼라를 위협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스마트 머신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지식 노동자의 일자리를 상당부분 대체할 것이다. 2016년 영국 경영컨설팅회사 딜로이트의 연구에 따르면 향후 10년 내에 영국 법률직 일자리 40%가 사라진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변화에 따른 교육 개혁, 복지 정책, 연구 개발 투자 등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가령 과학기술계 관련 교육을 인문 사회학적 소양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장려하고, 연구 개발과 각종 정책 결정에도 국민이 자신에게 주어진 주권자로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시민으로서 적극 참여하는 등 기존의 패러다임과는 달리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얼마 전 국제통번역협회가 주관한 인간과 인공지능(AI)의 번역대결 결과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인간 번역사들의 압승이었다. 인간의 태도·눈빛·음성·떨림 등을 반영한 문학과 설교문 등에서 AI의 점수가 아주 좋지 않았다. 즉, 아무리 스마트한 기계라 할지라도 우리 인간의 장점을 살린 예능 교육 상호교감하는 분야 등을 더욱 많이 개발하고, 스마트 머신과의 기능과 역할을 충분히 잘 검토한다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경제체제도 우리 인간이 주도하리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수준을 보면 최고 기술국인 미국을 기준으로 볼 때 지능형 반도체, 스마트 자동차, 지능형 로봇, 빅데이터 등에서 평균 80% 수준으로 기술격차가 4년 정도로 나타났다. 속도가 중요한 4차 혁명을 고려하면 다소 초조할 수도 있지만, 디지털 역량이 강한 대한민국의 민간 기업에서 충분히 추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과학기술 정책입안자, 대학교, 연구기관 등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큰 그림을 통해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지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산업을 어떻게 혁신하고, 스마트 머신과 인간의 파트너십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이고, 또한 스마트 머신이 인간의 삶의 질과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결정하는 전환점에서의 스마트 머신 관계자들의 윤리 기준 등을 최우선 담론으로 삼아 광범위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지금 과학기술계는 더는 이솝우화의 여우가 아니라 곧 닥칠 미래의 혁신을 주도하고 스마트 머신과 균형을 이루면서 인간 중심의 세계를 선도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