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의 만남은 늘 정겹다. 엊그제도 그랬다. 식당에서 맺지 못한 얘기들이 카페에서도 계속됐다.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했던가. 나는 그저 묵묵히 그들의 얘기를 들어줬다. 모두 교사인지라 주로 학교 교육 얘기였다. 그들이 인성교육 없는 학교를 비판할 땐 나도 덩달아 분개했고, 학생에게 행복을 주는 교사가 되겠다는 말엔 내 맘까지 따뜻해졌다. 흐뭇했다. 강의 때마다 내가 그들에게 주문했던 말이니까.
내가 경청에만 충실해서였을까. 제자 하나가 대뜸 나를 끼워 넣었다. "교수님 칼럼은 늘 재미도 있고 의미도 커요." "아, 그거 읽는구나! 땡큐." 또 흐뭇해졌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이 넌지시 던진 말이 따끔했다. "근데 학교체육 얘긴 통 안 쓰시데요." "아, 그거…." 몇몇이 더 찔러댔다. 그런 얘긴 신문사 칼럼 방향에 맞지 않아서라는 둥, 사회적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둥, 그래도 체육의 교육적 가치를 알려야 한다는 둥 나를 위한 변론인지 질책성 건의인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놨다. 그래 놓곤 이랬다. "호호호. 이 시대 최고의 학교체육 전문가이신 교수님께 감히…."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했네요. 아니, 숟가락질을, 하하하." 스승인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하지만 교사들이 교육을 걱정하고 체육을 얘기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닌가.

그들 말대로 내가 학교 교육을 연구한 지도 벌써 30여 년이 됐다. 그러니 어찌 할 말이 없을까. 쏟아내고 싶은 말과 글이 수천, 수만 페이지는 넘을 거다. 교과 교육학자인 나는 체육의 교육적 기능에 관심이 많다. 교사들이 말했듯이, 요즘 학교엔 인성교육이 없다. 모든 교과의 제1 목표가 인간본연교육인데 말이다. 주입식 암기와 도제식 기능 연마가 여전히 판을 친다. 어정쩡한 입시학원, 기술학원. 오늘날 학교의 모습이다. 이런 학교에서 체육도 교육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망가져 있다.

정과 수업인 체육은 엄연한 교육활동이다. 인성교육이고 인지교육이며 건강교육이다. 이것은 정부든 교육청이든 학교든 어길 수 없는 정책이고 목표다. 포괄적 교육 관점에선 이 세 영역 비율이 각각 33.3%다. 그런데도 기능, 경기, 체력에 초점을 맞춘 교사가 많다. 물론, 이런 활동도 중요하다. 다만, 정과 수업 외 스포츠클럽이나 운동부에 주력할 활동이다. 정과 수업에선 어떤 경우라도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 '교육으로서 체육'과 '스포츠경기'는 분명 다른 것이다.

교사들도 이 칼럼을 제법 읽는다니 이참에 자기 체크를 해보자. 자신이 교육으로서 체육을 가르치는 교사인지, 체력과 기능을 강조하는 실기기능사인지 말이다. 교사는 '밥을 교육, 수저를 신체활동'이라 여긴다. 학생들에게 수저라는 도구로 밥을 잘 먹도록 가르친다. 교사는 공 하나로도 학생들이 협동하고 소통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또 창의적 패스 방법을 탐구하도록 안내한다. 교사가 아닌 자에게 밥은 없다. 수저만 보일 뿐이다. 공을 더 정확히, 더 빨리 패스하라며 학생들을 다그친다. 또 동료를 이기도록 강조한다. 교사는 체육관에서 인본주의 철학자가, 운동장에서 행복 전도사가 돼야 한다. 이래야 교육이 바로 서고 애들이 행복해진다.

교원양성대학은 이런 교사를 길러내야 한다. 정부와 교육청, 그리고 학부모는 이런 교사들을 격려해야 한다. 또 이들이 맘껏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 이들의 재량권을 더 늘려줘야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7할의 교사가 참교육의 소신을 접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풍토와 학교방침 탓이다. 체육관도 더 지어야 한다. 부산의 경우 두 학교 중 한 곳은 체육관이 없다. 보유율 전국 꼴찌다. 비좁은 운동장과 열악한 시설 용구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이제 춘삼월이다. 올해도 운동장에서 바글대며 황사와 미세먼지를 마실 아이들과 교사들이 안쓰럽다.

부산교육대 체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