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에 있는 한 중소업체의 얘기다. 플라스틱 제품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이 회사는 국내 공장이 외국으로 이전하면서 일감이 줄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임원진은 고심 끝에 업종을 자동차 부품으로 전환하고 오래된 공장을 뜯어고쳤다. 첨단 정보통신기술에 기반을 둔 자동화 시스템을 전격 도입해 제조와 운영의 많은 부분을 스마트화한 것이다. 최근 이 회사는 독일 벤츠사를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단열 코팅유리를 생산하는 다른 업체도 주목할 만하다. 한 번 코팅으로 3중 효과를 내는 코팅액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불량률이 40%나 돼 제품 출시에 애를 먹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불량의 원인이 공기 중 이물질 때문임을 밝혀낸 이 업체는 곧바로 스마트공장을 구축해 이물질을 제거하고 공정 수율을 95%까지 높였다. 최근 이 업체는 대만과 인도네시아 등 외국 기업들과 200억 원에 이르는 수출계약을 달성했다.
'스마트화'를 통해 제조업의 혁신을 꾀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어 고무적이다. 스마트 공장은 기존 설비에 인공지능, 로봇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고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미 세계 각국은 스마트 공장을 주축으로 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소프트웨어와 정보통신기술을 제조업에 접목할 경우 제품의 기획, 개발, 양산, 판매, 서비스에 이르는 전 과정에 원가는 최대한 낮추고 품질은 최대한 높인 고객 맞춤형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정부도 지난해 말 발표한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을 토대로 제조업의 스마트화를 한창 진행 중이다. 업종 분야별로 데모공장을 구축하고, 관련 기술을 표준화하는 것은 물론 차세대 제조, 물류, 소셜로봇 등을 개발하고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제품 실용화를 확대하는 등 스마트 제조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주요 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이들 기술이 융합해 창출할 신제품,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전략도 마련하고 있다.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스마트 공장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적인 시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마트 공장은 기술의 활용 정도에 따라 기초 중간 고도화 등의 단계로 구분되는데, 처음부터 전 라인의 완전한 고도화를 이루겠다는 생각보다는 꼭 필요한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업 중 스마트화가 가장 시급한 분야를 묻는 응답에 73%가 생산 공정과 품질검사를 꼽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순수 국내기술의 적용만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장 전체를 자동화하는 것은 낭비다. 개선이 시급한 곳부터 하나씩 스마트화하면서 공장의 효율을 높이고,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정부도 이 같은 관점으로 중소 제조업체의 스마트화를 가속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누적 5000개, 2020년까지 1만 개의 스마트 공장을 목표로 확산하고, 전용 대출제도를 운용해 스마트공장 도입 시 금융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핵심 기술개발 지원, 규제개선, 공공구매를 통한 수요창출 등을 함께 추진해 주력 분야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제조업의 스마트화를 돕는 지원센터를 설치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기술이나 인력 부족으로 스마트 공장의 도입을 망설이거나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있다면 센터에서 필요한 인프라를 채워주는 것이다. 가칭 중소기업 스마트 지원센터 등을 통해 맞춤형으로 돕는 방식이다. 지역별 연구기관과 대학, 컨설팅 회사 등이 참여해 멘토링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세미나를 통해 시장, 기술 관련 고급 정보를 공유하여 개별기업이 확보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활용하도록 지원할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이미 거센 물결이 되었다. 이 파도에 과감히 올라타느냐, 그저 휩쓸려 갈 것이냐는 현재의 선택에 달렸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보호무역주의가 굳어지는 가운데 GDP의 30%를 차지하는 중소제조업의 재도약을 위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