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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포토라인에 서서

숱한 법률적 위반 혐의, 박 전 대통령 자초한 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렇게 성숙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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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오늘은 아마도 생애 가장 긴 하루가 될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 설치된 한 변 길이 70㎝ 정도 되는 노란색 삼각형은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촉처럼 보일 것이다. 노란색 삼각형 안에 표시된 작은 푸른색 점에 발을 딛고서 100여 명의 카메라 기자가 동시에 터트리는 카메라 플래시에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바로잡고 다섯 개의 계단을 올라 검찰청사 출입문까지 걷는 5m는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처럼 느껴진다. 7m 간격의 양쪽 포토라인 밖에 늘어선 기자들이 외치는 질문에 혼이 비정상이 된 듯하다. 

진짜 지옥 같은 시간은 검찰청사 유리문을 통과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금 밀고 들어가는 이 유리문을 오늘 밤 안으로 다시 밀고 나올 수 있을지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드는 걸 어금니를 꽉 물고 애써 눌러보지만 소용이 없다. 특수1부 조사실에서 마주 앉은 수사검사들은 예의를 갖춰 묻는다지만 비수가 번득인다. 계속되는 추궁에 "엮였다" "사실무근이다" "한 푼도 사익을 취한 적 없다"는 변명을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힘겹다. 뇌물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강요,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만도 13가지나 돼 한 고개 넘으면 더 높은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추진될 때,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진행될 때, 그리고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뒤에도 여전히 나오는 말이 있다. '이러면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박 전 대통령의 범죄혐의나 탄핵사유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항변일 수도 있고, 설령 어느 정도 혐의를 인정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투다. 차기 대통령을 포함한 미래 대통령들을 볼모로 삼아 박 전 대통령의 범죄혐의를 어떻게든 벗어보려는 지지자들의 안타까운 의도도 없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이 해방 70년 만에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이 된 데에는 민주주의가 됐기에 가능했다. 현대에서 독재국가가 경제 대국이 된 나라는 없다. 불의한 독재자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 국민의 민주의식과 굽히지 않는 저항성이 민주주의 국가의 동력이었다.

이승만으로부터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멀쩡하게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드문 것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보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을 용납하지 않는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독재자로 망명지를 떠돌다 죽거나 부하의 총탄에 쓰러지거나 감옥에 가거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 본인은 멀쩡하지만 형제나 자식이 재직 중 감옥에 가는 걸 지켜본 대통령도 많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피를 흘리고 독재에 저항하거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했다.

박근혜가 대통령에서 파면되기까지 과정은 이전과 버전이 달랐다. 시민들이 돌멩이와 화염병을 들고 싸우지도 않았고, 정권교체 뒤에야 힘 빠진 전직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웠던 사례들과도 차원이 바뀌었다. 그저 촛불 하나씩 들고 축제하듯 광장으로 나왔고, 민의를 반영한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법수호의 최고기관은 만장일치로 대통령 파면을 선고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 특검에 이어 오늘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자연인의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서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이 재직 중 한 일로 탄핵당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역사적 전례가 있으므로 앞으로 나올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은 기우다. 오히려 앞으로의 대통령들은 박근혜 사례를 거울삼아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엄격히 지키고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으려 애쓸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이라고 결코 법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전근대적이다. 

대통령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 자리에 올라서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고, 무엇보다도 국민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는 순간 불행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건 정해진 코스다.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한 역사를 보고서도 반복한 것은 오로지 박근혜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오늘 포토라인에 서서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본인만이 아는 일이다. 청와대에서 나오던 날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는 주장처럼 그만이 믿고 있는 진실을 찾아 미로를 헤맬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법률적 판단은 내려질 것이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긴 국민의 시선은 그가 밝히겠다는 진실이 무언지 이미 관심이나 흥미조차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렇게 성숙해 가고 있다.

논설주간 so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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