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교장이 이름표에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단 학생에게 "리본을 떼라"고 했다가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는 일이 있었다. 교문에서 지도활동을 하던 교장이 노란 리본을 단 학생 몇 명에게 "학교 안에서 달지 말고 밖에서 달고 다니면 어떻겠느냐"고 한 게 발단이었다. 학생의 표현 자유 침해 뜻이 아니라 중립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학교 측 해명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어찌보면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해프닝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사소한 듯한 사건이 눈길을 끈 것은 3년이나 지난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 때문이다. 세월호가 수면 아래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듯 그토록 뜨거웠던 논란이 한동안 잦아들었지만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는 뇌관이라는 이야기다. 노란 리본이 누구에게는 참사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상징이지만 또다른 누구에게는 여전히 볼썽사나운 정치적 상징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부산의 중학교에서 벌어진 일이 단순한 해프닝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

세월호가 마침내 수면 위로 올려졌다. 노란 리본을 어떻게 생각하든 107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처참한 선체는 그날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안타까운 비극을 되새기는 건 고통스럽지만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이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미수습자의 온전한 수습과 못다 한 사고원인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제야말로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리라는 기대감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이렇게 다시 세월호는 3년 전 그때로 우리를 소환하고 있다.

뒤늦긴 했지만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오른 이 시점에 진실 규명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달 이는 별 많지 않을 것이다. 1년6개월간 활동했던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해 6월 30일 활동이 종료됐다. 특조위는 나름대로 성과가 없지 않았지만 기한이 연장되지 않은 채 끝나 한계도 있었다. 무엇보다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로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혔다. 이 과정에서 특조위는 별 하는 일 없이 수백억 원의 예산만 펑펑 쓰는 '세금 도둑'이라는 엉뚱한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정부의 이런 비협조적 태도는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프레임과 맞물려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됐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유족들은 매도당했고 막말과 비아냥이 난무했다. 부산의 중학교에서 일어난 노란 리본 사건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 건 이런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수면 위로 떠오른 세월호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또다시 종전의 비방과 피로감 프레임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우려다.

그야말로 기우이길 바란다. 하지만 세월호 특조위의 진상 규명 작업에 대한 당시 정부 여당의 집요했던 방해를 돌이켜보면 마냥 기우일 수도 없다. 그리고 왜 그토록 정부 여당이 비협조로 일관했는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어느 정도 그 이유가 드러났다. 참사 당일 불투명하고 불성실했던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 원죄였기 때문이다. 비록 당시 행적 자체를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재판소는 보충의견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를 위반했다고 분명히 적시했다.

결국 당시 정부 여당의 집요한 진상 규명 방해 작업은 이 같은 박 전 대통령의 원죄를 덮기 위한 전형적인 분열책의 하나였던 셈이다. 실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비판 세력이 여객선 사고를 빌미로 투쟁을 재점화하려는 기도를 제어해야 한다'며 보수단체를 활용한 여론 조작의 필요성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국민 피로감을 빌미로 '언제까지 세월호 수렁에 있어야 하느냐. 농성장을 철거하고 이제는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가 귀가 따갑게 들렸다.

이처럼 본질을 호도한 소모적인 공방 탓에 정작 중요한 참사의 원인 규명은 미완인 상태로 끝나버렸다. 세월호 인양을 계기로 제2기 특조위를 꾸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본격적으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권 또한 진상 규명의 첫 출발이자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입을 모았으니 반드시 성사되리라 믿는다. 제2기 특조위가 출범한다면 검찰이나 특검이 제대로 밝히지 못한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또한 낱낱이 파헤쳐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지만 그 끝이 언제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남은 것은 오로지 억울하고 허망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다. 그러자면 진실을 밝히는 기간이 얼마나 되든 과거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 첫걸음은 지루할지도 모를 조사 기간 정치권이든 누구든 또다시 피로감 따위를 들먹이지 않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우리는 왜곡되고 조장된 피로감의 실체를 똑똑히 확인했다. 3년 만에 힘겹게 떠오른 세월호의 처참한 모습 앞에 그게 그나마 우리가 마지막 남은 예의를 다하는 출발점이다.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