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강대국. 군사·경제력 등에서 이미 미국의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구 소련 몰락 후 미국과 힘싸움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 해도 무리가 없다.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을 미국과 함께 G2라 부른다. 스포츠 쪽으로 눈을 돌려도 중국을 능가할 나라는 별로 없다. 탁구와 다이빙 등 특정 분야에서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자랑한다.

이런 중국도 축구로 범위를 좁히면 큰소리를 칠 수 없는 신세다. 세계무대는 고사하고 아시아권에서도 변방 취급을 받는다. 특히 한국과의 역대 대결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다. 비극의 시작은 197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이었다. 차범근에게 골을 허용해 0-1로 졌던 중국은 2010년까지 32년간 한국과 A매치 27번을 치르는동안 11무 16패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중국 내에서 '공한증(恐韓症)'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중국이 한국에 처음으로 이긴 건 2010년 2월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대회다. 이 때 중국은 우리나라를 3-0으로 꺾었다. 중국에서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이제는 공한증을 극복하게 됐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중국은 이후에도 한국과 3번을 맞붙어 1무 2패를 기록했다.

지난 23일 중국 창사(長沙)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전은 공한증이 지속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름할 중요한 경기였다. 그래서 중국 축구협회는 홈경기 장소를 '국족복지(國足福地·중국 축구대표팀이 복을 받는 땅)'로 알려진 창사로 정했다. 중국은 한국전 이전까지 이곳에서 8번의 A매치를 치러 4승 4무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이런 중국인의 간절함이 통한 까닭인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중국에 0-1로 졌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중국 원정에서 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얼마나 감격에 겨웠던지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이 넣은 것은 한 골이지만, 얻은 것은 13억 명 중국인의 마음"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스포츠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일상적인 일.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 축구가 더는 아시아 맹주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졌다.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을 자국리그로 끌어들여 수준을 높이는 중국을 더는 무시하기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이번 패배는 입맛이 쓰다.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대해 무자비한 보복을 자행 중인 중국을 축구에서라도 시원하게 이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 컸던 까닭인 듯싶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