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봄이 왔다. 도시에서 어제, 손님들이 찾아와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 다들 늦게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아내는 아침 일찍 하우스에 상추 모종을 심느라 부산하다. 뒤늦게 마당에 널브러진 술자리의 잔해를 치우려 현관문을 나서는데, 얼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바람이 불어왔다. 따뜻한 기운… 그건 봄이었다. 고개를 돌려 집 뒤쪽의 산을 바라보니 붉고 청명한 빛깔의 진달래가 활짝 웃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광주리를 옆에 둔 채 냉이와 쑥을 캐는 마을 아낙들이 있다. 그곳에 오후쯤,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아내와 딸아이가 서툰 손짓으로 나물을 캔다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역시 산골에서의 삶은 봄이 제격인가 싶다.

어젯밤, 다음 달에 시집을 가는 딸이 마지막 가족여행을 제안해, 마침 내가 사는 마을로 다니러 온 사촌 누나 내외와 마당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즐거워했다. 자신들이 사는 도시의 아파트에선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나는 내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늘 하듯 통기타로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들려주었다. 순간, 조만간 가족의 울타리에서 떠나야 하는 조카딸과 몇 년 새 이마에 주름이 깊어진 사촌 매형의 눈이 붉어졌다. 부녀간에 회한과 아쉬움이 씁쓸하게 묻은 표정이었다. 한참 뒤, 별이 지기 시작하면서 술자리에 사촌 매형과 나만 남았다. 젊은 시절, 나와 같은 대학에 다녔던 그는 크게 한숨을 쉬며 자신도 나처럼 시골로 들어오고 싶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아들과 그간의 빚 때문에 아무래도 십 년은 더 도시에서 돈을 벌어야 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산골로 들어온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동안 내게 귀촌 후의 삶을 묻는 이들이 꽤 있었다. 어떤 이는 차를 몰고 직접 찾아오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밤늦은 시간에 술에 취해 전화를 해오기도 했다. 그만큼 도시의 삶이 팍팍하다는 증거였다. 그에 대한 대답은 내가 명쾌하게 설명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 신혼 때 술김에 아내에게 몇 년만 도시에 살다 시골로 가자는 말 때문에 발목이 잡혀 들어왔지만, 확실히 시골행은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치밀하고 구체적인 계획으로 귀촌을 준비한 아내와는 달리 나는 그저 이 문제를 낭만적으로 접근했다. 모 방송의 귀촌 프로그램과 공지영 작가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두세 번 정독한 게 다였으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시골살이에 어설픈 나만 빼고 아내와 아이들은 금방 이곳 생활에 적응했다.

세월이 금방 흘렀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이곳 대안학교(산청, 민들레학교)에서 보냈던 아들은 올해 대학에 들어갔다. '가난하게 살자' 가 모토였던 이 학교에서 아들은 기본 교과 과목 외에 농사짓기, 흙집 짓기 그리고 두 차례 해외이동학습을 통해 제 나름대로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건실한 젊은이가 되었다. 올해 초, 시골 중학교에 진학한 딸아이 역시 자연이 주는 건강한 기운과 또래 아이들과의 풍성한 교감을 통해 시골생활에 만족하는 눈치이다. 애초, 도시의 경쟁적이고 배제적인 교육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려왔기에 우리 부부에게 이 정도면 큰 수확이었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귀촌, 귀농을 꿈꾸는 어른들은 나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농사를 짓고 싶으면 반드시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준비를 하는 게 필수이다. 해당마을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군청에 귀농·귀촌 전담부서가 있어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혹 농사에 자신이 없으면 미리 건축 관련 일(배관, 미장, 도배 등)을 배워오거나, 일손이 필요한 곳이 많으므로 육체를 튼튼하게 준비하면 좋겠다. 나와 비슷하게 시골로 들어온 사람 중 몇몇은 곶감, 딸기, 그리고 시설농사로 성공한 사례가 있고,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며 전원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또 다른 몇몇은 이곳의 생활에 부적응하여 다시 도시로 간 사람도 있긴 하다.

다시금 말하지만 봄이 왔다. 찬바람 불고 황량했던 겨울은 본시 따뜻한 바닷가 도시에서 살았던 내게 너무 혹독했다. 그래도 나는 그 겨울을 버텼다. 그래서 귀촌 6년 차, 새로 맞이하는 봄은 내게 퍽 희망적이다. 몇 해 전, 소설가 한강이 지인이 살던 집의 담벼락에 남겼다는 그녀다운 글귀가 문득 생각난다.

'겨울은 버텼고 봄은 왔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