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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부산의 '박근혜 사랑' 그리고 이별 /차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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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3-26 19:15:3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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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2일 아침 부산 정치판이 발칵 뒤집어졌다. 2주 뒤 닥친 '4·15총선' 여론조사 보도 탓이었다. 국제신문은 부산 판세를 '17대1'이라고 전했다. 열린우리당이 부산을 싹쓸이하는 결과였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이 거세다고 해도, 설마 부산까지…."

바로 그날 오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이하 박근혜)가 부산에 내려왔다. 열흘 전 구원투수로 당 대표가 된 후 첫 부산행이었다. 시민들 반응은 뜨거웠다. 한나라당도 놀랄 정도였다. 후보들의 지지율도 서서히 반등하기 시작했다. 선거 사흘 전 마지막 유세차 부산에 들렀을 땐 '박근혜 돌풍'으로 변해 있었다. 후보들은 서로 '제 논에 물 대기' 싸움하듯 박근혜 쟁탈전을 벌였다. 드디어 투표함이 열렸고, 한나라당에서 환호가 터졌다. '1대17'. 거꾸로 한나라당의 완승이었다. 열린우리당이 앞서가다가 판 자체가 거의 완벽하게 뒤집어진 곳은 광역단위에선 부산이 유일했다.

4년 뒤 2008년 18대 총선. 이명박 정권은 친박계에 대한 공천학살을 자행했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 박근혜의 절규에 선거판은 요동쳤다. 부산은 가히 '쓰나미급' 후폭풍에 직면했다. 김무성을 비롯,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한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이들의 명분과 구호는 오로지 '박근혜 구하기'였다. 공천받은 친이계 후보들은 은근히 승리를 기대했다. 박근혜의 정치생명보다 보수정권의 성공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낙관이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부산 18개 선거구에서 무려 6명의 탈당 친박계 후보들이 당선됐다. 한나라당 간판으로 당선된 11명 중(나머지 1명은 민주당) 3명이 친박계로 분류됐다.

박근혜가 공천권을 행사한 19대 총선. 부산의 '박근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16대2'의 압도적 승리를 안겨줬다. 같은 해 대선에서 박근혜는 전국적으로 3.5%, 108만 표 차이로 신승했다. 그러나 부산은 박근혜에게 59.8% 몰표를 던졌다. 문재인(39.9%)보다 44만여 표를 더 준 것이었다. 박근혜에게 부산만 한 효자는 없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뒤 치러진 2014년 부산시장 선거. 판세는 끝까지 대혼전이었다. 시민후보를 자처한 오거돈의 승리가 조심스레 점쳐지기 시작했다. 이에 여당이 선택한 비장의 카드는 '박근혜의 눈물' 현수막. 서병수는 "세월호 사고에 책임을 통감하며 박 대통령이 흘린 눈물을 이제 부산시민이 닦아 달라"고 호소했다. 결과는 1.3% 차이로 서병수가 승리했다. 국제신문은 오거돈의 패배를 분석하며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 "막판 '박근혜의 눈물'에 꺾여."
흔히들 부산 선거 결과를 '지역 구도의 산물'로 분석한다. 그런데 박근혜를 대입하면 그 구도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박근혜의,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선거'. 최소한 지난 13년간 부산은 박근혜에게 절대적 사랑을 보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결과는 무엇일까.

'세계 5대 해양도시로 도약'. 지난 대선 박근혜의 부산 대표 공약이다. 하지만 도약은커녕 한진해운 공중분해로 해양도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부산 숙원사업인 '가덕도 신공항'은 물 건너갔다. 대신 '김해공항 확장'안이 슬그머니 '김해신공항'으로 둔갑했다. 부산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 까닭일까. 매년 청년들은 대거 떠나고 노인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한 마디로, 부산은 박근혜를 '짝사랑'했던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일방적 사랑을 보냈던 이유는 대충 짐작된다. 산업화를 이끈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 양친 모두 비극적 삶을 마친 데 대한 안타까움. 여기다 '원칙과 신뢰'로 포장된 박근혜의 신비주의까지. 문제는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부산의 왜곡된 정치지형을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태동, 박근혜 시대에 맹위를 떨친 '일당독식' 구도가 대표적 사례. 그 때문에 부산에서 정치적 경쟁과 견제는 오래전 실종됐다. 이와 함께 경제적 활력도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 지난해 총선부터 부산은 박근혜에 대해 서서히 냉정함을 되찾고 있는 듯하다. 급기야 지난 연말에는 매 주말 서면 거리를 가득 메우며 '박근혜와의 이별'을 소리 높여 외쳤다. 물론 "박근혜 탄핵 무효"를 외치는 목소리도 아직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파면당한 최초의 대통령, 박근혜를 우리 부산도 '쿨하게'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다가온 '장미대선'에선 정말 냉철하게 판단해서 표를 던져야 한다. 그래야 부산이 산다!

부산가톨릭대 인성교양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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