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어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공무상 비밀누설 등 13가지 혐의를 받는 피의자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검찰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통령으로 헌정사에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또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에 이어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첫 대통령이라는 오명까지 안게 됐다. 대한민국 정치사로 보나, 박 전 대통령 개인적으로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면서 18대 대선에서 승리해 첫 여성·부녀 대통령이라는 영예를 안았던 그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사안이 중대하고 지시를 이행한 공직자뿐만 아니라 뇌물 공여자까지 구속된 점에 비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반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청사 포토라인에 선 지 6일 만이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 영장 청구와 관련해 발표한 내용에는 그동안 고심했던 흔적이 읽힌다. '오로지 법과 원칙, 수사 상황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 김수남 검찰총장의 언급도 이에 다르지 않다.

검찰은 '막강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하여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게 하거나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이고, 주요한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동안 다수의 증거가 수집됐지만 피의자가 대부분 범죄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등 향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존한다'거나 '공범인 최순실과 지시를 이행한 관련 공직자들뿐만 아니라 뇌물공여자까지 구속된 점에 비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유인 증거 인멸과 사안의 중대성 등에 비춰 볼 때 정치적 고려 없이 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법리에 합당하다는 논리다.

이는 어쩌면 박 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질 때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 명예롭게 퇴진할 기회가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수차례 담화를 통해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논리로 일관했다. 검찰과 특검 수사를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그 결과에 대해선 '사상누각'이라거나 '엮인 것'이라고 항변한 것이 그 예다. 특히 지난 21일 검찰 소환에 응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라는 29자짜리 코멘트를 남긴 박 전 대통령이다. 이와 더불어 박 전 대통령을 옹위하는 것이 소임인 양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친박 세력들이 그의 판단을 그르쳤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10~11월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했던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기금 출연 강요 등을 공모한 피의자로 보고, 8가지 혐의 사실을 공소장에 적시했다. 게다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을 적용해 5가지 혐의를 추가했다. 이를 부인하며 박 전 대통령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며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선 친박 세력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자 사태를 오판하게 만든 조력자라 아니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태는 분명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당장 탄핵으로 사상 초유의 조기 대선이 목전에 닥쳤다. 하지만 그 바탕에 깔린 촛불민심이 뭘 원하는 지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건 권력남용과 사익 챙기기가 통하지 않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한 열망이다. 그렇다고 태극기 집회를 외면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야당 대선 주자들은 박 전 대통령 영장 청구는 당연하며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불구속 수사를 바라는 입장에선 유감스럽다는 반응도 여전하다. 이 사태가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며 사법부의 판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법불아귀(法不阿貴)'를 소신으로 하는 검찰총장이 전직 대통령 영장 청구라는 결단을 내림에 따라 법원의 판단에 박 전 대통령의 운명이 달렸다. 서울중앙지법은 오는 30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열 예정이다. 출석 여부와 관계 없이 구치소나 검찰청의 유치 장소에서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검찰과 박 전 대통령 측의 법리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오로지 법의 원칙에 따른 냉정한 법원의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