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4호기에서 냉각재가 과다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리원전 측은 냉각재 수집조 수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자 수동 정지시켰지만 첫 이상이 감지된 때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여서 늑장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냉각재는 원자로 내부를 순환하면서 핵분열 반응으로 생기는 열을 식히는 중요 시설이다. 비록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새지는 않았다지만 냉각수 누출에서 비롯된 대형 원전사고가 많았던 만큼 또 한 번 아찔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고리원전을 곁에 둔 시민들의 마음은 늘 불안한 상황이다. 잊을 만하면 크고 작은 결함과 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리3호기의 격납건물 내부 철판이 대규모로 부식돼 두께가 줄어든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용한 지 30년이 넘는 이들 노후 원전에서 돌아가며 '지뢰'가 터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사고 원인은 오리무중이고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방사성 물질 누출 등 피해는 없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잇단 사고에도 핑계를 대기에만 급급한 한수원 측 태도다.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았으니 큰일이 아니라는 무사안일이 더 걱정스러운 것이다. 사고 원인 조사 또한 민간 전문가 등이 배제되는 등 폐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불신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러니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한수원이 내세우는 '재발방지 대책 수립'과 '안전에 문제 없음'은 이제 상투적 경구가 돼 버린 지 오래"라고 일부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이처럼 불신이 켜켜이 쌓여온 탓에 이제는 어떤 해명을 해도 믿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갖가지 사안을 숨기며 투명하지 않게 처리해 온 한수원 등 원전 당국이 자초한 바다. 이들 노후 원전에 대한 철저한 안전관리 못지 않게 한수원 등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한층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향후에도 뿌리 깊은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이들 노후 원전의 폐로만이 근본 대책이라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