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은 공동체적 유대감으로 가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형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터득한 진리가 인간과 자연(시간과 공간)의 합자연인 우주론적 가치관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구한말 이후 들어온 서구 문화를 우리의 자연관 및 인간관과의 갈등 해소를 위한 충분한 기다림 없이 받아들인 순간부터 혼란이 왔다. 외국의 물질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서양인의 우주관이 거르지 않았다. 서구인의 주된 자연관, 인간관은 '나'에 맞서 있는 존재로서 정복과 투쟁의 대상으로 봄으로 '나'의 존재를 최대한 부각하여 최대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줄을 몰랐다.

원래 우리의 문화는 씨줄(시간)과 날줄(공간)로 짜인 '체'로 걸러서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삼국시대에 받아들인 불교, 유교, 도교사상을 그렇게 받아들여 우리의 것이 되었다.

이러는 과정에서 터득한 한국인의 전통적 시간은 '나'와 '너'를 준열하게 구별할 필요가 없었다. 나의 존재는 너의 존재와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서구인들의 시간관과 다른 것이다. 서구인들이 주로 느낀 일차원적 시간관에서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기에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없는 시간이고, 현재는 끊임없이 없어져 가는 순간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태도는 결정론적, 일회적, 현실적인 동적인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적인 시간관은 과거 현재 미래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서구적인 판단 척도로 잴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시간, 공간, 인간의 현세적 의미로 설명되어야 한다.

인간은 역사 안에서, 역사와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운명은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는 곧 그가 삶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가 된다.

서구인의 심리적인 차원의 시간관은 자연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간관으로 발전되었으니, 시간의 실재성을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의식 속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개념은 신학자 오거스틴(354~430)의 경우에 더욱 확실해진다.

그는 참회록에서 "지금에 의해서 똑똑히 밝혀진 것은 미래도 과거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과거로서의 현재는 기억, 현재로서의 현재는 직관, 미래로서의 현재는 기대일 따름이다"고 언급했다.

우리의 시간관은 과거·현재·미래가 융합된 삼위일체가 서로 작용한다. 따라서 과거는 사라진 시간이 아니라 삶과 더불어 쌓이는 셈이다. 회남자(淮南子)에 보면 원래 우주라는 말은 상하사방이 우이고 옛날부터 지금까지를 주(上下四方曰宇 往古來今曰宙)라고 하여 시간과 공간이란 뜻으로 쓰였다. 여기에 인간이 개재됨으로써 삼간(三間)이 되어 역사라는 표현을 쓴다.

이럴 경우 인간은 마치 사거리 중심에 있는 신호등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만약 신호등이 고장 나면 모든 차량이 정체되듯이 인간이 올바른 위치에 있지 못할 때 자연의 순리가 파괴된다. 일회적인 작용으로 현재가 과거로 평가받는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다. 한국의 사상적 전통은 인간 사이에 긴장관계, 변증법적 역학관계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인간관계에서 지니고 있는 나뉨(分)을 하나로 묶어 조화를 꾀하려고 하였으니 삼국통일, 고려 건국, 대한민국 독립이 그렇다.

우리의 사상은 다툼을 꺼리는 겨레였으며 너와 나의 비분리성을 높게 평가해 왔다. 조선 시대의 분파는 유학자의 학문적 분파에서 영남과 기호학파의 학문과 사상적 성향이 지역적으로 당파의 분쟁이 있어 부정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여기에 오륜(五倫)이라는 유가의 가치관이 높게 받쳐 주어 사상적으로는 같이 소통을 하면서 분쟁이 아닌 토론문화의 결실을 본 이기(理氣) 사칠논쟁(四七論爭)이라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예도 있다. 몽고난, 임진왜란, 한말 구국운동 등 국가의 위란이라는 시간적 위기가 닥치면 공간적(애국심)으로 총화단결하였다.

우리는 오지 않는 미래의 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았고, 눈앞에 펼쳐진 시간을 조망하며 조급증을 멀리 해왔고, 지나간 시간을 소중히 하여 아끼고 계승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즐기면서도 '나'라는 존재보다도 '우리'라는 의식을 표출하는 데 과감하였다. 이제 우리는 직선적 시간관이 주는 삶의 자세로 시간 공간의 우주질서를 파괴하는 난폭한 언어나 무질서한 행동을 자제해야 정치적 외교적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의 시간관은 원융회통(圓融會通)이고 윤회(輪廻)하는 삶의 시간관이기에 지금이 어렵고 고달프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과거·현재·미래의 의미중심(意味中心)에서 모두가 선업(善業)을 지어 다음 세상으로 이어가야 한다.

동부산폴리텍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