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제정된 의료보험법을 바탕으로 1977년 486개 사업장의 의료보험조합이 설립됐고 1989년부터 국민 의료보험시대가 열렸다. 2000년부터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 운영되고 있다.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사회보험방식을 본떠 도입했으나 전통적인 사회보험과는 달리 국가라는 단일 보험자가 관리·운영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짧은 역사에도 세계가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보장제도로 발전하였다.
건강보험공단 재정이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흑자를 내 20조 원이 넘는 적립금이 쌓였다. 재정 수입은 국민이 보험료를 내고 20%를 국가가 지원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얼마 전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추계 분석을 한 결과, 2018년도에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2023년에는 적립금이 소진된다고 예상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가 고령화라고 한다. 100세 시대가 전개되고 수명이 연장되지만 노년의 마지막 10년은 질병과 함께 보내야 한다. 소득이 없는 노인들이 병원 찾을 일이 늘어나면 덜 걷고 더 쓰는 구조로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GDP 대비 의료비는 2013년 약 7.2%에 불과하다. 미국처럼 GDP 대비 16.4%의 높은 의료비 지출에도 다수의 의료 소외계층 문제로 고민하는 나라도 있지만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의료비는 9~12%이다. 우리의 공공의료비 비율은 55% 정도로 OECD 국가 평균 73%에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우리 국민의 건강보험료 분담률은 2010년 월 소득의 5.33%였으나 지난해 6.12%로 0.8%포인트 정도 올랐다. 그러나 임금인상에 따른 소득증가로 건강보험 수입은 2010년 28조 원에서 지난해 47조 원으로 늘어 연평균 약 9%씩 증가했다. 반면 지출은 연평균 약 7%씩 증가했다. 작년에 우리 국민은 1인당 약 20회 병원 진료를 받았고 월 4만5763원의 건강보험료를 냈다. 보험공단은 병원과 약국 등 의료기관에 1인당 월 7만9536원의 의료비를 지급했다. 보험공단의 재정 흑자가 국민으로부터 걷은 돈을 아껴 쓴 결과라 판단하면 얼핏 관련자들을 칭찬할 만하다.

우리 국민의 진료비 중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건강보험보장률은 약 64% 수준이다. 나머지 약 36%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선진국의 보장수준은 약 80%이다. 의료비 본인 부담이 높은 이러한 결과는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원 측은 비급여서비스를 통해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않으면 급여비용만으로는 의료원가에 미치지 못해 경영이 어렵다며 난감해한다.

필자는 건강보험 적립금의 수준이 과도하다고 판단한다. 건강보험은 그해 재정수입으로 지출을 실행하는 예산방식이다. 특히 공공의료비 비율이나 국민 의료비 지출 등의 지표는 전 세계 학자들이 관심 있게 공유하는 통계지표이다. 주어진 예산을 사용하여 우리의 의료 관련 지표를 높여 OECD 국가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국민이 불편해함에도 불안감을 조성하며 적립금을 쌓아두려 함은 우리 복지 수준의 잣대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불합리해 보인다.

고령화 사회의 국민건강에 대비하려면 건강보험료율은 현행 소득의 6%대 수준에서 최소 8~9%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의료비 지출증가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삶의 질 향상에 따른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일이다. 이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합의도 필요하다. 원래 남 돕기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성을 보면 긍정적인 여론에 이해를 잘하고 올바른 정책에는 순응하리라 믿어진다. 여유 있는 사람은 조금 더 보태면 좋겠다. 국민건강은 사회보장의 영역이기 때문에 제도 유지에 부족한 나머지 예산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우리나라는 '공공부조' 형식으로 어려운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의료보호제도 등의 사회보장체계가 건강보험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필자는 지금이 건강보험제도의 보장성 강화정책의 당위성과 그에 따른 고충분담방식을 국민에게 진솔하게 털어놓고 의논해야 할 시점으로 생각한다.

부산항운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