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중국여행을 갔을 때였다. 상하이 황푸 강변의 둥방명주탑이 빤히 보이는 벤치에서 쉬고 있을 때 두 아가씨가 다가왔다. 띄엄띄엄한 생존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들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랜드로바 신발이었다. 한국은 신발도 멋지게 만드는데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가씨들의 시선이 내 눈에 닿았다. 당시 나는 단안피(單眼皮), 즉 그녀들이 말하는 외꺼풀이었다.

신발에서 꺾인 그녀들의 자부심이 눈꺼풀에서 반전되었다. 한국 사람은 단안피인데 중국인은 대다수가 쌍안피, 즉 쌍꺼풀이라는 설명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 여자들의 쌍꺼풀 수술 열풍에 대한 지적질도 잊지 않았다. 애국심이 발동했다. 한국 사람도 다 외꺼풀은 아님을 강변해주었다. 내 눈이 외꺼풀이라 그런지 그녀들은 반신반의하며 안녕을 선언했다.

세월이 흐른 후 나도 쌍꺼풀이 되었다. 성형왕국 건설에 일조를 한 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안검염이 생기면서 눈썹이 안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영(Young)할 때는 내 눈에 그게 보였다. 거울 보며 족집게로 뽑아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올드가 되자 상황이 변했다. 눈썹은 더 가늘어졌고, 근시까지 겹치자 눈동자를 찌르는 눈썹이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눈썹이 보이지 않다니. 한마디로 맙소사였다. 사흘이 멀다 하고 안과를 다녔다. 미안하지만 안과 의사들도 그 눈썹을 노련하게 뽑지 못했다. 때로는 부러뜨렸고, 그렇게 되면 다음 날이나, 그다음 날 또 안과를 들러야 했다.

안과의사의 권유로 성형외과를 찾았다. 눈 상태를 보더니 쌍꺼풀 수술을 하면 80~90%는 눈 찌름 방지 효과가 가능하다고 했다. 게다가 치료목적이니 보험적용도 가능하다기에 수술을 질러버렸다. 그때 성형의가 성형면제의 첫 특권을 내려주었다. "혹시라도 이마에 보톡스 맞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눈꺼풀이 내려와 다시 눈썹이 눈동자를 찌를 수 있습니다." 얼쑤, 희소식이었다. 평생 이마에 돈 들일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수술을 했다. 마취제가 의식을 장악할 때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인간의 의식이 색색으로 늘어질 수 있다는 것. 글 쓰는 나에게는 참 소중한 경험이었다. 결과만 보면 나쁘지 않았다. 확대경을 보며 눈썹과 씨름하는 날이 쿨하게 줄었다.

성형면제 특권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세봉합술 전문 성형의였다. 자전거가 원인이었다. 싱싱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았다. 한강변처럼 자전거를 타기 좋은 곳도 드물었다. 너무 심취한 걸까? 잠깐 눈을 감는다는 게 한 호흡 길었다. 눈을 떴을 때 자전거는 이미 길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얼굴에 중상(?)을 입었다. 이마와 눈썹 사이, 인중 옆이 그 부위였다. 시골에서 막 자랐기에 작은 상처 따위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인중 옆에 벌떡 일어난 상처도 그냥 손으로 눌러 붙였다. 집에서 대략 소독을 한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상처가 부어올랐다. 우리 집 사모님 성화에 못 이겨 동네 외과로 갔더니 성형외과로 떠민다. 별수 없이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거기서 봉합술을 받았다.

그걸로 끝나면 좋았을 것을 봉합이 살짝 어긋나 버렸다. 시술의는 사고 직후에 바로 오지 않아서 그런 거라며 두 달 후에 재봉합을 지시했다. 결국 강남 원정까지 감행하여 미세수술 전문의를 만났다. 약 8개월을 오가며 눈물 콧물 자아내는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대략 복구가 되었지만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치료과정에 다음 코스가 있었다. 기본 복구를 하고 나서 판단하자고 했었다. 오랫동안 신경을 쓰다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던 터. 고생한 김에 정밀복구 과정도 상담하게 되었다. 그때 나온 전문의의 말이 제대로 명언이었다. "꼭 해야 하나요? 그냥 사세요." 설명은 간단했다. 당신이나 신경 쓰지 다른 사람은 잘 모른다는 거였다. 응?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전문가의 말이다 보니 우리 집 사모님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때는 바야흐로 성형을 쇼핑하듯 하는 시대. 하지만 성형외과에서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끔 성형으로 반질반질 얼굴을 다림질하신 분들을 볼 때마다 그 말이 떠오른다. "꼭 해야 하나요? 그냥 사세요." 성형전문의들, 저 사람들에게는 왜 그 말을 하지 않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에게 하자가 있는 건 아닌가? 이제 와서 괜히 궁금해진다. 혹시 내가 없어 보여서 그런 건 아니겠지?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