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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만약에

대통령 파면과 구속, 외고집 독선의 자충수

같은 상황 반복돼도 다른 선택할 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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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을 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은 없다. 그야말로 죽은 자식 뭣 만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만약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또는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이라는 최악의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탄핵이나 파면한 국회와 헌재, 구속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되돌아갈 수 없는 종착역까지 끝내 가버린 박 전 대통령이 당시 판단과 선택, 결정을 달리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불행의 씨앗을 잉태한 최태민과의 만남부터가 그렇다. 사이비 교주에 불과한 최태민에게 쏙 빠져 헤어나지 못한 건 전적으로 박근혜의 선택이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보고서 표현대로 '최태민이 박근혜의 심신을 온전히 지배했건', 사촌형부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말처럼 '둘이 방에 들어가면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건 간에 모든 건 전적으로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의 자기 결정에 따라 이뤄진 일이었다. 누구 탓하고 말고 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첫 출발이 잘못됐더라도 본궤도로 돌아올 기회는 있었다. 최태민이 박근혜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 등 권력형 비리를 저질러 정보기관의 감시망에 걸렸을 때다. 박정희가 '최태민이란 놈, 뭐하는 놈인지 알아보라'는 지시에 따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친국'까지 벌였을 때가 그때였다. 하나 박근혜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맘대로 해보라"고 고함을 치는 통에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만약에 이때 최태민을 제거했다면 질긴 악연은 끝났을 것이고, 훗날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하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의 외고집과 자기중심적 성격이 암세포를 키웠다.

정계에 입문해서도 양지로 나올 기회는 많았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도 최태민 얘기는 심심찮게 나왔다. 그때마다 그는 목에 파란 힘줄까지 올리며 변호하기 급급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최순실-정윤회 부부를 2대에 걸쳐 그림자처럼 두고 국정 농단과 비선 논란의 독초를 키웠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측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정윤회를 비롯한 최태민 일가가 직권을 남용할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다 음모다.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말을 못하느냐"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또 고름은 커지고 살은 더욱 썩어들어갔다.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조차도 최태민 일가에 빠져 있는 누나 박근혜를 구출하지 못했다. 박지만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속고 있는 누나를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내고, 대통령이 된 뒤 최순실 정윤회에게 최면이 걸린 듯한 누나를 보며 '피보다 진한 물이 있다'며 한탄했지만,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다. 원로 자문그룹 7인회의 좌장이었던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도 실패했다. 대통령 당선 직후 "이제 최태민의 그림자를 지우시라"는 말을 꺼냈다가 절연까지 당했다.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 뒤인 이때라도 최태민 일가와의 악연을 끊었더라면 불행의 싹은 더는 자라지 않고 말라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독버섯을 계속 키워나갔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을 때인 지난해 7월 이후에도 최악의 상황을 피할 마지막 기회는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하고 겸허하게 사태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빌었다면 이후 전개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세 차례의 담화는 국민적 분노만 키웠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 '오래전부터 기획된 것' 등 야당과 국회, 언론 탓만 하며 민심에 맞섰다. 국회 탄핵소추가 추진될 때 야당에서 거국적 중립내각안, 자진하야론 등 질서 있는 퇴진론을 제기하면서 퇴로를 열어줬지만, 박근혜는 마이웨이였다. 만약 자진 하야했다면 지금처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당하고 구속되는 처지까지 몰렸을까.

검찰과 특검의 수사, 헌재의 탄핵 심판과정에서도 약속 뒤집기와 '남 탓'은 계속됐다. 게다가 대통령 변호인단의 막무가내식 억지와 상식 밖의 변론은 '국민적 밉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친박계와 박사모의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지지와 거기에 기대 연명하려는 박 전 대통령의 편협한 의식은 대다수 국민의 마음을 더욱 멀게 만들었다. 국민통합을 위해 태극기 집회 자제를 당부하고, 전 국민을 상대로는 혐의를 솔직히 인정하고 모든 걸 내려놨다면 여기까지 왔을까.

수많은 가정을 해보지만 박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1970년대에 머물러 박제화된 그의 사고와 행동은 똑같은 상황이 닥쳐도 역시 같은 판단과 선택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약'은 그에게 의미가 없는 가정법일 뿐이다.

논설주간 so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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